[민주노동당 진로]노동자-농민대변 급진정책 예고

  • 입력 2004년 4월 15일 23시 19분


“이제 대한민국의 정치는 보수정당 독점구조의 제1기에서 진보와 보수가 경쟁하는 제2기에 들어섰다.”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대표는 15일 44년 만의 진보정당 원내 진출의 의미를 이렇게 규정했다.

▽탄압 대상에서 원내 제3당으로=천영세(千永世) 선대위원장 등 당직자들은 “광복 이후 진보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쾌거”라고 말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기존 정당과는 다른 진보적 정책을 제시해 온 민주노동당이 제3당으로 급부상한 것은 단순한 ‘제3당 자리바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시위와 수감을 반복하던 ‘단속 대상자’들이 하루아침에 법을 만들고 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진보정당은 남북분단이란 특수상황 속에서 반세기 동안 ‘좌파’란 이념적 편견에 눌려 음지를 방황해야 했으며 보수 정치세력이 장악한 현실 정치에서 언제나 탄압의 대상이었다.

▽급진 개혁과 유연성 사이에서=노동자와 농민, 도시 빈민의 대변자를 표방해 온 민주노동당은 기존의 모든 틀을 확 바꾸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부유세 도입을 비롯해 무상의료 무상교육, 재벌해체, 사유재산제 제한 등은 오래 전부터 밝혀온 공약이다.

권 대표는 이날 “도둑 소굴이라 불리는 국회를 바꿀 것이다. 국민은 특권을 반납하고 서민과 동고동락하는 국회의원을 보게 될 것”이라며 고강도 정치개혁 주도를 예고했다. 대표적 노동운동가인 단병호(段炳浩) 비례대표 당선자도 “민주노총 등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겠다. 노동관계법 전반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강경한 노사관련 입법활동을 벌일 것임을 시사했다.

민노당은 17대 국회 개원 즉시 이라크 파병 철회안을 제출하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농업개방 반대 운동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개혁정책 추진과정에서 대립각을 세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편 권 대표는 “2008년 제1야당, 2012년 집권을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고, 당내에서는 “당 정체성은 굳게 지키되 이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는 어느 정도 타협이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있어 대중화를 통한 당세 확장 작업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거리로 내몰렸던 과격 사회운동 세력은 상당 부분 제도권으로 수렴될 것이란 분석이 많다.

▽긴장한 재계=대기업은 민노당의 원내 진입에 대해 일단 적잖은 불안감을 드러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임원은 “민노당이 노동자에 호응하는 목소리를 내고 열린우리당도 가세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노사관계 불안정으로 투자 심리가 더욱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국회가 초당적인 협력을 통해 경제 살리기에 나서 달라고 주문하면서 시장경제원리를 존중해 주기를 희망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이원재기자 w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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