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헌재는 무슨…민중의 함성이 헌법"

  • 입력 2004년 3월 29일 20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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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중앙대 석좌교수)씨가 <문화일보>에 매주 월요일 써오던 고정 칼럼 ‘도올고성’을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김씨는 29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관련된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는 제목의 칼럼을 썼으나 문화일보측이 “(칼럼 내용을)감당할 수 없다”며 게재를 거부하자 기고 중단을 전격적으로 밝혔다.

문화일보 편집국 관계자는 “국장단에서 논의를 한 결과 촛불시위가 자제되는 상황이고 선거를 앞둔 시점인데다 공정성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판단, 본인에게 실을 수 없다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면서 “그러나 앞으로 쓰는 글의 게재와는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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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씨는 문화일보의 결정에 반발해 이날 오후 중앙대학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문화일보가 ‘도올고성’에 대한 게재를 일방적으로 거부해 사직서를 제출했다”며 칼럼 원문을 공개했다.

김씨는 게재되지 못한 칼럼에서 “10만 동학군의 선혈, 4·19의 의혈, 5·18항쟁의 분혈의 수레바퀴가 2세기를 쌓아올린 민주(民主) 공든탑의 총체적 운명이, 오늘 이 시각 9명의 단순한 해석자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는 작금의 사태야말로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의 위헌사태”라면서 “법이란 조문이 아니다.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의 헌법은 역사적 체험의 축적이 없이 일시에 몇 명의 제헌위원이 탁상에서 만들어낸 것”이라면서 “일제식민지를 통해 수용된 대륙법계열의 성문법만을 우리나라 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법에 대한 보편적 인식의 결여를 의미하는 치졸한 발상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릇된 명(命)이라도 한번 떨어진 모가지는 다시 붙을 수 없다”면서 “헌재의 판결을 조용히 기다리라는 모든 감언이설의 배면에 망나니도끼에 대한 기대와 암약이 도사리고 있다면 조선의 민중은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탄핵정국이 근원적으로 우리사회의 정의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분노를 수그러뜨리면 안된다”면서 “우리 민중의 함성! 그것 이상의 헌법은 없다. 우리는 헌법을 새롭게 써야한다! 빛나는 광장으로 나서라!”고 요구했다.

다음은 도올이 문화일보에 게재하려던 글 전문.

도올고성6

제목: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

법이란 조문이 아니다.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 법이란 인간이 군집생활을 영위하면서 그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질서를 역동적으로 규정하는 모든 약속체계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것은 에토스요 노모스다. 법이란 실정법만 아니라 자연법도 있는 것이요, 성문법만 아니라 불문법도 있는 것이다. 일제식민지를 통하여 수용된 대륙법계열의 성문법만을 우리나라 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법에 대한 보편적 인식의 결여를 의미하는 치졸한 발상일 뿐이다.

헌법이란 반드시 헌법이 규정하고자 하는 정체(政體)의 역사적 체험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헌법은, 피비린내나는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된 미국의 성문헌법이나 마그나 카르타, 권리청원, 권리장전을 거치면서 왕권을 제약하고 국민의 권리를 확대해나간 영국의 불문헌법과는 달리, 역사적 체험의 축적이 없이 일시에 몇명의 제헌위원이 탁상에서 만들어낸 것이다(1948. 7. 17. 공포).

그것은 헌법학자 뢰벤슈타인의 말대로, 신체가 의복에 맞을 정도로 성장할 때까지 서랍속에 보관되어 있는 아무도 입지않는 명목적 의복과도 같은 것이다. 우금치에서 흘린 10만 동학군의 선혈, 4.19의 의혈, 5.18항쟁의 분혈의 수레바퀴가 2세기를 쌓아올린 민주(民主) 공든탑의 총체적 운명이 오늘 이 시각 9명의 단순한 해석자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는 작금의 사태야말로 대한민국 건국이래 최대의 위헌사태라고 나 도올은 감언한다.

천일의 앤. 에라스무스의 모가지에도, 최수운?해월의 모가지에도 망나니의 도끼는 어김없이 내려쳐졌다. 그릇된 명(命)이라도 한번 떨어진 모가지는 다시 붙을 수 없다. 헌재의 판결을 조용히 기다리라는 모든 감언이설의 배면에 망나니도끼에 대한 기대와 암약이 도사리고 있다면 조선의 민중은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 망나니의 도끼는 헌법을 불살라버릴 것이다. 헌법 그 자체를 국민의 삶으로부터 완전히 이탈시켜버릴 것이다.

우리는 지금 평온한 총선의 논리로 함몰되어서는 안된다. 탄핵정국이 근원적으로 우리사회의 정의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분노를 수그러뜨리면 안된다. 바로 이 시각 우리 민중의 함성! 그것 이상의 헌법은 없다. 우리는 헌법을 새롭게 써야한다! 빛나는 광장으로 나서라! 그리고 락밴드 킹 크림슨의 ‘에피타프’(碑銘)의 마지막 구절을 되씹어 보아라!

“운명의 철문 사이에 시간의 씨앗은 뿌려졌고, 아는 자 알려진 자들이 물을 주었다. 민중이 우리의 헌장을 만들지 않는다면 모든 지식은 죽음의 키스일 뿐. 모든 인간의 운명이 바보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니!”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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