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기현/사할린이 일본 땅?

  • 입력 2004년 3월 28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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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을 일본 영토로 인정하는 것이 한국 정부의 공식 방침입니까?”

러시아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모스크바에 체류 중인 신효숙(申孝淑·교육학) 박사는 최근 한 학술회의에서 ‘러시아 중등학교 교과서에 나타난 한국사’를 주제로 발표한 뒤 토론자에게서 엉뚱한 질문을 받았다.

한국 정부가 낸 책자에 현재 러시아 영토인 사할린이 일본 영토로 표시돼 있다는 것. 러시아 교과서의 한국 관련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 온 신 박사는 오히려 한국 정부가 펴낸 출판물의 오류를 해명해야 하는 곤란한 처지가 돼 버렸다.

문제의 책자는 올해 초부터 주러시아 한국대사관이 현지의 주요 기관과 인사들에게 배포하고 있는 영문판 한국 핸드북(Handbook of Korea).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이 지난해 11월 11번째 개정판으로 낸 이 책은 하드커버 장정에 고급 용지를 사용해 컬러 인쇄를 하는 등 호화롭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표지 안쪽 한국 주변 지도에 사할린이 일본 영토로 표시돼 있다.

작은 실수라고 넘겨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사할린이 100여년 동안 계속돼 온 러시아와 일본간 영토분쟁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 러시아는 러일전쟁의 패배로 사할린을 일본에 빼앗겼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되찾았다.

2차 대전이 끝난 지 60년이 되도록 두 나라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북방영토’라고 부르는 쿠릴열도 4개 섬의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4개 섬은 바로 사할린주(州)에 포함돼 있다.

결국 이처럼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민감한 영토 문제에 대해 한국이 일본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를 사게 된 셈이다. 더구나 올해는 러일전쟁이 발발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 양국간 영토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시점이다.

한국은 그동안 독도 영유권과 동해 표기 문제로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상대로 치열한 외교전을 벌여 왔다. 우리 주장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라도 다른 나라의 민감한 현안을 세심히 다루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기현 모스크바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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