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일영/한국 정치와 쿠데타

  • 입력 2004년 3월 14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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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를 두고 반노(反盧)측은 의회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자축하고 있고 친노(親盧)측은 ‘의회 쿠데타’라고 비난하고 있다. 한국 정치에서 쿠데타는 그리 낯선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의회 쿠데타’라는 말은 귀에 설다.

▷지난 50여년간 한국에는 네 차례의 쿠데타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다. 그는 불과 3600명 정도의 병력을 동원해 무혈로 정권을 탈취했다. 다음은 전두환 소장을 비롯한 신군부가 감행한 군사 쿠데타다. 이것은 1979년 12월 12일 군부 장악으로 시작돼 이듬해 5월 17일 정권을 거머쥐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장거리 마라톤형 쿠데타였다.

▷그런데 한국에 쿠데타가 두 차례 더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첫 번째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권력 연장을 위해 일으킨 ‘부산 정치파동’이다. 간선제로는 재임이 어렵다고 판단한 이 전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한 상태에서 국회를 위협해 직선제 개헌을 성사시켜 재임을 보장받았다. 이것은 1952년 5월부터 7월까지 두 달 정도 소요된 단축 마라톤형 쿠데타였다. 두 번째는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단행한 ‘유신 쿠데타’다. 직선제로는 연임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박 전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의회를 해산한 후 간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연장시켰다.

▷앞의 둘은 군부가 정권 찬탈을 위해 정부를 전복시킨 반정부 쿠데타였다. 반면 뒤의 둘은 대통령 자신이 집권 연장을 위해 군을 동원해 의회를 위협한 친위 쿠데타였다. 이번 탄핵안 통과는 여소야대의 분점정부 하에서 지난 1년간 충돌을 벌이던 의회와 대통령이 마침내 의회가 대통령을 탄핵하는 사태로까지 번진 것이다. 대통령과 의회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앞서 두 차례의 친위 쿠데타와 맥을 같이 하지만 의회가 대통령을 공격한 경우라는 점에서 친위 쿠데타와는 성격이 판이하다. 한국은 얼마 전까지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논의되던 나라였는데 어느덧 의회가 대통령을 탄핵하는 국가가 됐다. 이것이 의회의 승리인지 쿠데타인지 결말이 궁금하다.

김일영 객원논설위원·성균관대 교수 iykim@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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