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국가연합…’ 남북 국가연합 최적의 모델은?

  • 입력 2004년 3월 12일 21시 14분


◇국가연합 사례와 남북한 통일과정/신정현 김영윤 김현 정성장 지음/416쪽 2만3000원 한울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2000년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에 명시된 이 내용을 두고 남과 북 어느 쪽이 양보한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당시 북한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에 대해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제도, 두 개의 정부 원칙에 기초해 북남 두 개의 정부가 정치·군사·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갖고 그 위에 민족통일 기구를 세운 뒤 북남관계를 조정해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사실상 연방제라기보다는 남과 북의 공존적 성격이 강한 국가연합의 형태였지만 북한은 이후에도 여전히 ‘연방제’라는 용어를 고수하고 있다.

2000년 6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의 정상이 만났다. 6월 15일 발표된 남북공동선언에는 남과 북이 ‘국가연합’의 형태를 현실적 통일 방안으로 인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이는 북한측이 줄기차게 주장해 오던 ‘연방제’를 포기할 경우 초래될 인민들의 동요를 고려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때문에 논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실제로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정치학)은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외형적·제도적으로는 남측의 ‘남북연합’ 안보다 순수한 국가연합의 정의에 훨씬 더 부합한다”고 평가한다.

어쨌든 남과 북은 국가연합 형식의 통일방안에 합의한 셈이지만 국가연합 체제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는 멀고 먼 길이 남아 있다.

3명의 정치학자와 1명의 경제학자로 구성된 필자들은 미국, 독일, 유럽연합, 독립국가연합(CIS) 등 역사상 국가연합을 시도한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며 남북국가연합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했다.

신정현 경희대 교수는 1787년 연방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미국에 존재했던 국가연합체제를 검토했다. 신 교수는 “미국의 국가연합은 13개 주들이 대영(對英) 독립투쟁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나눠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다같이 근대 자연법사상과 자유주의적 사상에 바탕을 둔 정부체제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에 비춰 남북연합의 경우에도 공동의 목표와 사상적, 체제적 동질성을 갖도록 화해와 교류 및 협력을 통한 상호적응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국가연합이 연방제로 귀착됐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한국에서 제안된 남북연합도 결국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제도에 의한 통일국가의 실현으로 대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연합의 사례를 검토한 정성장 연구위원은 “국가연합의 실현을 위해서는 초국가적 기구의 창설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남북한이 남북연합을 형성하고 초국가기구를 설치해 주로 비정치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에 주력한다면 북한이 초국가기구의 설치에 반드시 부정적으로 나오리라는 법은 없다”고 전망한다. 또한 그는 유럽연합의 형성이 수많은 협상과 조약의 체결을 통해 이뤄졌음을 상기시키며 “한국정부는 처음부터 남북연합의 완성된 모델을 가지고 접근할 것이 아니라 ‘낮은 단계의 남북연합’을 먼저 형성하고 점진적으로 ‘높은 단계의 남북연합’으로 발전시켜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높은 단계의 남북연합’이 어떤 것이 될지는 계속 논의해야할 과제. 하지만 “북한이 통일방안에서 ‘연방제’를 주장하고 있다고 해서 ‘연방제’에 대해 맹목적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이나, 북한의 연방제 자체를 순수한 연방제로 오해하는 것 모두가 통일과정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고 정 위원은 지적한다. ‘국가연합’이든 ‘연방제’든 용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통일방안을 찾으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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