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사돈 민경찬씨 653억 펀드 풀리지 않는 의혹

  • 입력 2004년 2월 2일 18시 53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사돈인 민경찬씨가 투자약정서나 투자계획서 없이 653억원의 자금을 모았다고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밝힌 내용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직접 조사한 신해용(申海容) 금감원 자산운용감독국장은 2일 “그런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도 민씨가 투자약정서 등 서류를 제출하도록 압박을 넣겠다고 밝혀 일단 민씨 진술의 신빙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또 야권에서는 차관급 이상 고위직이 ‘민경찬 펀드’에 개입되었다며 정치쟁점화할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어 이번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민씨의 말,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첫 번째 의혹은 어떻게 투자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투자 자금을 모을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신 국장에 따르면 민씨는 투자자금을 모으면서 부동산 벤처 유가증권 등에 투자할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디에 투자할지는 명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씨는 신 국장과의 면담에서 “‘민경찬이가 이런저런 것을 할 것이라는 말이 퍼지면서 자금이 모여들었으며 모두 나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굳이 이를 명시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지인(知人)들끼리 뭔가 투자를 하기 위해 일단 자금을 모았다’는 것.

그러나 한 투자자문사 고위 관계자는 “인가를 받지 않은 사설 투자회사(일명 부티크)에서도 투자자금을 모으기 위해 투자약정서를 교부하는 게 관행인 점에 비춰 볼 때 민씨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유사 수신행위 등 법망을 피할 목적으로 투자약정서와 투자계획서 등의 서류를 숨기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투자자들이 누구인지를 민씨가 명확하게 알고 있지 못한다는 점도 의문이다.

민씨는 투자자들에 대한 신 국장의 질문에 대해 “내가 직접 모은 것이 아니라 잘 알지 못한다”며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현재는 얘기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지인이라면 어떻게 투자자가 누군지 모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자금 모집 과정과 투자자금의 존재 여부도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신 국장은 “자금 모집에 누군가가 개입해 주도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민씨가 현재 자금이 ‘은행 계좌’ 또는 ‘개인 소유’ 등 어떤 형태로 보관되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증언한 대목도 석연치 않다.

▽민경찬 펀드 의혹 확대될 듯=금감원이 단순히 민씨 진술에만 의존하는 등 소극적인 조사에 그친 데다 야당은 이런 조사 행태에 강력 반발하고 있어 ‘민경찬 펀드’를 둘러싼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민주당은 금감원의 소극적인 조사를 문제 삼는 데 이어 고의 은폐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으며 조사결과가 미진할 경우 임시국회에서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기로 했다.

민주당 장전형(張全亨) 수석부대변인은 “현 정부 차관급 고위 인사가 이 펀드에 깊숙이 간여하고 있다는 물증을 확보했다”면서 청문회를 열어서라도 권력형 비리 실체를 파헤치겠다며 벼르고 있다. 한나라당도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설 것을 거듭 촉구하고 있어 펀드를 둘러싼 위법성 논란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야권에서는 이 사건을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규정짓고 있다.

파문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청와대도 적극 나서고 있다.

민정수석실이 2일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민씨에 대해 내사를 지시한 것은 1차적으로는 수사권을 갖지 못한 청와대가 조사과정에서 한계를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씨는 청와대에 자료도 내놓지 않는 등 조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는 데다 설사 합법적으로 펀드가 모아졌다고 해도 투자자들의 실체와 펀드모집 과정에서의 하자 등을 살피려면 어떤 형태로든 경찰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친인척 비리나 측근비리에 대해 지나치게 온정적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민정수석실로서는 ‘대형 사고’를 미리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자체 조사뿐 아니라 금감원과 경찰의 합동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금감원은 “우리는 더 이상 조사할 권한이 없다”며 ‘민경찬 사건’에서 손을 떼겠다는 방침이어서 추가 조사를 둘러싼 혼선도 일부 빚어지고 있다.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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