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수도이전 국민 제대로 설득한적 있나”

  • 입력 2004년 1월 29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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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오른쪽)이 29일 서울 혜화동성당을 방문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최근의 정국상황에 대한 걱정을 털어놨다. 국회사진기자단
김수환 추기경(오른쪽)이 29일 서울 혜화동성당을 방문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최근의 정국상황에 대한 걱정을 털어놨다. 국회사진기자단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은 29일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한마디로 나라가 걱정된다는 심정인 것 같았다. 김 추기경은 “이런 걱정을 하는 내가 굉장히 보수적이죠” “좋은 얘기만 해야 하는데…”라며 스스로 말을 아끼려 애썼지만 그의 ‘나라 걱정’은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이부영(李富榮) 상임중앙위원=추기경님, 좋은 말씀 한 마디 해주십시오.

▽김 추기경=솔직히 걱정이 됩니다. 우리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걱정이 됩니다.

▽정 의장=모든 국민이 다 걱정하고, 나라가 잘 되길 바랍니다.

▽김 추기경=신문마다 관권선거 얘기가 나옵니다. 여러분은 ‘안 한다’고 하겠지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우리당이 관권선거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오늘도 대전에서 행정수도 이전 행사를 하죠. 왜 수도를 옮겨야 하는지에 대한 객관적 이유를 아무도 국민에게 납득시키지 않고 있습니까.

▽신기남(辛基南) 상임중앙위원=30년 전부터 추진되던 것입니다.

▽김 추기경=한 리서치를 보니까,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나라로 미국을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미국이 주적(主敵)이 됐습니다. 한 장군에게 들었는데 군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병도 있다고 합니다. 반미친북 세력이 커져가는 게 사실입니다.

▽김영춘(金榮春) 의장비서실장=그 리서치 결과는 북핵 문제에 대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극우파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 추기경=부시 대통령에 대해선 나도 이의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즘 감정적 반미가 많아졌습니다. 반미친북으로 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신 상임위원=시대 상황에 따라 자주적으로 가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추기경=전체적 경향이 그런 식으로 이끌어지면 우리 미래는 어떻게 되나 걱정됩니다.

▽김 실장=제가 볼 때 우리당 지도부는 다 보수적입니다.

▽김 추기경=지금은 확실한 여당이 아니지만, 여당이 되면 보수화돼야 합니다. 모든 국민이 나서서 요구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상임위원=개혁과 안정이란 모순 되는 수레바퀴를 같이 굴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김 추기경=이번 다보스 포럼 주제가 ‘인간 안보’였습니다. 불가침의 기본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지켜준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합니다. 민족공조를 강조한 나머지 어떤 것(주의)도 좋다는 식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이 상임위원=대북 관계에서 북한 인권과 군비 축소 문제 논의를 병행해 나갈 겁니다.

▽김 추기경=그것 반드시 하십시오. 앰네스티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인권개선을 위한) e메일을 보낸다고 합니다. 열린우리당이 그런 용기가 있다면 100% 찍어주겠습니다(웃음).

▽정 의장=추기경께서 100% 찍어주신다는 데 못하겠습니까.

▽김 추기경=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이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길이라고 봅니다. 6·15 남북공동선언 내용 가지곤 너무 부족합니다. 북한에 아주 유리하고, 우리가 얻은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정 의장=우리도 얻은 게 많습니다.

▽김 추기경=잘 읽어보십시오. 뭘 얻은 게 있는지…. 북한이 중국 정도의 체제 변화는 돼야 하는데, 주민 상당수가 굶어죽어도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 요구만 하고, 우린 그들 마음 상할까봐 따라 다닌 것입니다. 북한의 변화는 우리의 바람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그렇게 가고 있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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