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외교vs동맹외교]“외교의 목표는 國益…”

  • 입력 2004년 1월 16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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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15일 윤영관(尹永寬) 외교통상부 장관을 전격 경질하면서 “자주외교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제시한 것을 계기로 ‘자주외교론’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의 본질에 청와대와 정부 내에 포진한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동맹파’와 자주노선을 중시하는 ‘자주파’간의 노선갈등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본보는 ‘동맹’과 ‘자주’의 개념을 되짚어보고 바람직한 우리 외교의 방향을 진단하기 위한 긴급 전문가 좌담을 마련했다. 좌담에는 고려대 현인택(玄仁澤), 서울대 이근(李根) 교수와 정욱식(鄭旭湜)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참여했다.》

▽현인택 교수=‘자주’냐 ‘동맹’이냐가 논란을 빚고 있다. 우선 정부가 자주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이 과연 현 정부가 지향하는 일종의 독트린이나 전략을 말하는 것인지, 수사(修辭)인지부터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1년간 정부가 다양한 외교를 펼쳐 왔지만 정작 이 문제에 대한 개념 설명을 충분히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자주외교와 동맹외교가 상충되는 것처럼 비치니 당황스럽다.

▽이근 교수=현 정부 관계자들은 자주외교라는 말은 많이 하지만 정작 자주외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정의는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정부가 말하는 자주는 국내용이라는 느낌이다. 대외적 관계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국내의 청중을 향해 자주란 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용어 자체가 정치화됐기 때문에 논쟁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자주외교가 등장한 과정을 살펴보면 외교의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교의 목적은 국가이익의 달성에 있어야 한다. 우리 목적에 맞는 수단을 건져낸다면 동맹이든 아니든 자주적 외교다.


▽정욱식 대표=외교통상부 장관 경질을 동맹파와 자주파간 권력투쟁의 산물로 보는 것은 객관적 사실과 동떨어진다. 우선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구성이나 역할을 봤을 때 이를 자주파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역설적으로 지난 1년간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후보일 때나 인수위 때보다 보수화하고 친미화했다. 이를 주도해 온 것이 NSC다.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은 외교안보팀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실망이라고 봐야 한다. 북핵문제나 이라크 파병 문제, 용산기지 이전을 포함한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 등에서 당초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판단한 듯하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그런 문제들의 진전을 기대하고 지난 1년간 친미를 해왔는데, 결과적으로 성과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은 여전히 난망이고, 이라크 파병도 결국 미국의 요구대로 전투병 파병으로 결정되지 않았나.

▽현=정부가 스스로의 외교노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검토해야 한다. 첫째 국제적으로 우리나라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 둘째 어떤 국가이익을 추구하느냐, 셋째 그 국가적 목적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이냐다. 이를 통틀어서 어떤 노선의 외교냐를 말할 수 있다. 물론 자주 그 자체를 목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외교의 기본적 목적은 국가이념과 가치에 맞추어서 국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과정이다. 때로는 동맹노선을, 때로는 독자적 노선을 걷기도 해야 한다. 둘은 상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정=노 대통령은 당선 뒤 ‘친미적 자주’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그 표현 속에 외교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한미관계의 불안요인을 걷어내면서 자주성을 추구하는 식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실패한 것 같다. 친미는 된 것 같은데 자주가 이뤄졌는가는 회의적이다. 하지만 자주라는 용어를 남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과 미국의 국익은 20세기 냉전시대에는 어느 정도 친화성이 있었지만 탈냉전기인 21세기에 들면서 양국의 국익에는 균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진정한 자주는 우리의 국익을 스스로 판단하고 실현시키는 것이며 외국과 갈등이 있더라도 관철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이=이번 문제가 우리 외교정책에 미칠 파급은 분명히 클 것이다. 옛날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떻게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상황이 빚어질 듯하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외교를 일방주의라고 하지만, 그 사상적 이론적 기반은 탄탄하다. 그러나 한국의 자주외교는 이론적 사상적 기반이 없기 때문에 전략도 없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국제세계에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을 포함해 한 나라도 없다. 우리가 싫으면 안할 수 있는 것이 자주냐, 국가이익을 위해 싫어도 하는 것이 자주냐 하는 문제가 있다.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되는 현 상황에서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게 좋은지, 이론적 기반을 먼저 세워야 한다. 문제는 과연 정부의 외교정책이 일관성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일관성이 있어야 상대국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

▽정=대통령의 문제 인식이 ‘자존심을 양보하면서까지 미국의 입장을 수용했지만 북핵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할 때 일정 부분 미국과의 긴장관계를 감수하더라도 자주적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또 그렇게 되길 기대한다.

▽현=대내외적으로 상당한 혼란이 올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 등 모든 것이 국제적 상호의존적 현안이다. 이런 현실과 자주적으로 가겠다는 노선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이나 다른 국가들은 이 사태를 한국외교의 전환점으로 보고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정=한미동맹은 정전체제와 마찬가지로 50년 전 6·25전쟁이 낳은 산물이다. 21세기 들어 정전체제가 평화제체로 이행하는 데 있어 정전체제에 기반을 둔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정전체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한미동맹의 역할을 어떻게 바꾸고 새로운 비전을 세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이를 채워 나가는 것이 자주외교의 목표와 내용이 돼야 한다. 현재의 종속적 한미상호방위체제를 미일동맹체제처럼 협력적 체제로 전환하는 문제,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전제로 한미동맹을 폐기하는 문제까지도 검토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미국은 한미동맹을 지역동맹화하려 한다. 한국은 이라크 파병 결정으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미국의 지역동맹 틀 속에 들어간 셈이다. 그러나 지역동맹은 분쟁 개입에 따른 위험을 안고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 나름의 파병 원칙과 개념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국내적으로 합의된 원칙을 세우고 제도화해서 동맹국의 요구 가운데 수용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분명히 해 두면 미국도 그 원칙에 따를 것이다.

▽현=상대적으로 좀 더 자유로운 국가가 되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 하지만 동북아에서도 가장 작고,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북핵문제를 포함해 산적한 현안이 있는 한국으로서의 위상과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한국은 자주로 가기 위해서는 상호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 외교정책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고 지난 50년간 우리 외교를 통째로 부인해선 안 된다. 그 시기 외교는 우리 국가의 규모와 역량에 맞춰 대응한 정책이었다. 현실에 맞춰온 결과일 뿐인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가느냐는 앞으로 생각해야 한다. 자주와 동맹은 배치되지 않는다. 동맹을 통해서도 자주적 외교를 실현시켜갈 수 있다.

▽이=최근 미국 상원의원 보좌관을 만나서 파병문제나 북한인권 문제를 놓고 의원에게 편지를 쓴 한국인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편지쓰기는 미국 정치인을 움직이기 위한 기본적인 방법이지만 우리는 자주외교를 말하면서도 그런 노력을 안 했다. 한미관계가 국력의 차이에 따라 설정되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하지만 군사 경제적 힘의 차이 이외의 것을 좁히려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은 미국에 우호적인 학자들을 양성해 미 의회 청문회에서의 증언이나, 신문기고를 유도하는 방법으로 일본의 이익을 지켜낸다.

▽정=한국 외교관들은 ‘한미동맹은 깨져선 곤란하다’는 심리적 마지노선 때문에 미국을 우월한 위치에 놓아버린다. 바로 이점에서 이라크 파병도 자주적이지 못했다. 국내에서 파병문제를 두고 국익이 뭔지를 자주적인 관점에서 토론하는 공론화 과정이 없었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했을 뿐이다.

▽현=단순히 미국이 요청한 파병을 한국이 수용했다는 이유로 비자주적인 외교라고 볼 수 없다. 한국도 미국에 뭔가를 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국제정치 현실은 냉혹하다. 우리나라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성취할지에 대해 냉정한 자기성찰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리=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사진=변영욱기자 cut@donga.com

▼참석자 프로필▼

▼현인택(玄仁澤)▼

△54년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UCLA 정치학 박사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현)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원장(현)

▼이근(李根)▼

△63년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 박사

△외교안보연구원 조교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현)

▼정욱식(鄭旭湜)▼

△72년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한반도 평화국민협의회 운영위원(현)

△‘2003년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저자

△평화네트워크 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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