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헌주/日 언론의 ‘재신임’ 충고

  • 입력 2003년 10월 16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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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민투표’ 정국에 대한 일본 언론매체의 보도는 객관적이라고 평가해도 좋을 것 같다. 그들의 관심은 이번 사태의 전개 과정을 통해 한국 내 어떤 성향의 사람들, 어느 정당이 유리해지느냐 불리해지느냐에 있지 않다.

그들은 북한 핵관련 6자회담이나 동북아 정세, 이라크 파병 등 긴박한 국제적 공통 관심사를 시야에 넣고 한국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정론지인 아사히신문은 16일자 사설을 통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안을 ‘위험한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아사히의 사설은 국민투표가 실시되면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이 강한 시대적 배경과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감이 없는 상황이 어우러져 노 대통령이 승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을 둘러싼 환경을 생각하면 국민투표 실시는 ‘위험한 도박’임에 틀림없다는 진단이다. 위헌 소지가 있는 투표를 실시함으로써 생기는 정치 공백이나 당파적 싸움을 허용할 만큼 한국이 처한 상황이 한가롭지 않다는 것이다.

한미일 사이에는 북핵 6자회담, 이라크 파병 등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또 국민투표 결과 재신임이 된다 해도 모든 혼란의 종결을 뜻하는 것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아사히의 사설은 결론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다수파 야당과 좀 더 유연한 태도로 대화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여야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도 애써 쌓아올린 한국의 대외신용도가 상처 받는 일이 없도록 당리당략에만 매달리지 말고 자제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그릇된 역사 인식을 비판해도 ‘쇠귀에 경 읽기’인 일본을 측은하게 여겨 왔다. 그런 일본으로부터 한국의 정쟁에 대해 충고를 듣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해외에서 조국의 혼란스러운 정국을 지켜봐야 하는 한국인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살맛 나는 뉴스가 없는 것은 차치하고 각종 의혹과 수사 소식밖에 들리지 않는다. 여기에 외국 언론의 눈에조차 ‘위험한 도박’으로 보이는 ‘정치 게임’이 벌어지니 어깨에 힘이 빠진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노 대통령이 국민투표 카드를 던지면서 재신임을 자신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대통령이 ‘안방의 승자’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는 무한경쟁 속에서 질주하는데 언제까지 진흙탕 국내 정치 싸움에만 매달릴 것인가. 대통령의 눈은 ‘지금 여기’를 떠나 ‘미래와 세계’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조헌주 도쿄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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