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처, 실무자만 징계… 有權無罪 논란

  • 입력 2003년 9월 5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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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홍보처가 최근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AWSJ)에 한국 언론인을 비하하는 내용의 글을 기고해 파문을 일으킨 정순균(鄭順均·사진) 차장에 대해 “잘못이 없다”는 결론을 내려 ‘유권무죄(有權無罪)’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국정홍보처는 5일 “지난달 22일자 AWSJ에 게재된 정 차장의 글은 △한글 원문이 부적절했고 △영어 번역에 착오가 있었으며 △700단어짜리 투고문 가운데 400단어만 실리면서 원문의 뜻이 훼손됐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국정홍보처는 이에 따라 산하 해외홍보원에 대해선 기관 경고, 외신협력관 박모씨에게는 서면 경고 조치를 내렸다.

정 차장은 당시 투고문에서 “한국 기자들은 기초 사실을 확인 않고 보도하며 정부로부터 술과 밥을 대접받고 기사를 쓰고 주기적으로 돈 봉투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유권무죄?=국정홍보처 유재웅(兪載雄) 국장은 5일 브리핑에서 “‘촌지 향응’이란 표현을 주기적으로 돈 봉투를 돌렸다고 번역한 실무자도 잘못이지만 한글로 쓴 초고도 잘못됐다”고 징계 이유를 설명했다.

국정홍보처는 그러나 실무자가 쓴 초고를 직접 첨삭, 수정해 확정한 정 차장에 대해선 “잘못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유 국장은 기자들이 “최종 책임자 대신 실무자만 징계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하자 “정 차장은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졌다”며 “양해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기자협회는 즉각 논평을 내고 “정 차장을 조치하지 않고 실무자와 기관만 징계한 것은 ‘유권무죄 무권유죄(無權有罪)’로 윗사람의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기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행태를 되풀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솜방망이 징계=국정홍보처는 “수사가 아닌 만큼 정 차장으로부터 경위만 들었다”고 밝혔으나 정 차장이 파문에 대해 어떻게 해명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정 차장은 AWSJ 투고로 파문이 빚어진 지난달 22일 기자실을 찾아 “책임질 만한 일이 있으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정홍보처가 실무자와 기관에 공식 징계로 볼 수 없는 ‘경고 조치’를 내린 것도 논란이 예상된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경고’는 ‘파면-해임-정직-감봉-견책’ 등 5단계의 공무원 징계에 해당하지 않는 낮은 수위의 문책이다.

또 국정홍보처가 3일 이 같은 징계조치를 내린 뒤 이를 즉각 공개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이와 관련, 유 국장은 기자들이 “정부에 불리한 내용이어서 숨기려 했던 것이 아니냐”고 묻자 “앞으로는 곧바로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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