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 긴급체포]與비주류 “우릴 죽이려는 음모…”

  • 입력 2003년 8월 11일 23시 37분


11일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이 검찰에 긴급체포되면서 정치권 전체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전망이다.

검찰 수사의 칼날이 권씨에게 현대 비자금이 전달된 경로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종 사용처인 정치권 전반을 겨냥할 경우 사태의 파장이 민주당은 물론 청와대로까지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민주당 주류-비주류, 어느 쪽으로 불똥 튀나=일단 권씨가 현대 비자금 의혹사건에 연루된 것은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에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권씨가 비록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현대 비자금이 조성돼 여권에 전달된 시점은 현재의 비주류가 여권의 핵심위치에 자리 잡던 시점이다. 따라서 당장 비주류는 청산돼야 할 ‘구 정치세력’으로 몰리면서 붕괴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비주류 일각에서는 이미 “우리를 죽이기 위한 모종의 음모가 작용한 것 아니냐”며 청와대와 주류쪽을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득실 계산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사건의 불똥이 자칫 주류에까지 튈 경우 여권 전체가 공멸 위기로 빠지면서 신당 논의가 백지상태로 돌아갈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동교동계 인사들은 ‘150억원+α’ 의혹이 불거졌을 때 주류쪽을 겨냥해 “받을 것은 다 받아먹어놓고 깨끗한 척하는 사람들이 있다. 리스트도 있다”는 얘기를 노골적으로 했었다.

현재 민주당 주류의 중추세력을 이루고 있는 개혁파 의원들이 2000년 16대 총선에 출마했을 때에 개별적으로 적지 않은 돈을 지원해준 것이 사실인 만큼 주류측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번 권 전 고문 긴급체포로 오히려 주류측이 정치적 궁지에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정치자금에 관한 한 ‘정거장론’을 펴왔던 권씨가 현대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시인하면서 이 돈을 건네받은 인사들에 대해 입을 열 경우 파문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시각이다.

그 여파로 민주당 내의 신당 논의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정치권 ‘빅뱅’의 기폭제가 될지 모른다는 극단적 예측도 나오고 있다.

▽말 아끼는 청와대=청와대 관계자들은 “우리가 뭐라고 언급할 문제가 아니다”고 입을 굳게 다물며 말을 아끼고 있다.

동해안에서 휴가 중이던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이날 저녁 권 전 고문의 긴급체포 사실을 전해 듣고 “아이고, 참 이걸 어떻게 하나. 할 얘기가 없다”며 한동안 말문을 열지 않았다. 유 수석은 이어 “지금 검찰이 완전히 독자적으로 수사를 하고 있는데, (정치권에서) 이번 사안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면서 또다시 ‘음모론’이 불거지는 것을 걱정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대북송금 의혹사건 특검수사로 인해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측과의 관계가 악화돼 있는 데다 권씨 문제까지 터지면서 양측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한나라당, “터질 것이 터졌다”=한나라당은 권씨의 긴급체포 소식을 접하자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었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해 온 16대 총선 당시 현대 비자금의 여권 유입설이 사실로 확인됐다는 이유에서다.

박진(朴振) 대변인은 즉각 논평을 내고 “‘대북 퍼주기’식 햇볕정책에 정경유착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며 “민주당과 현 정권은 뼈를 깎는 자세로 자성하고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여권에 유입된 현대 비자금 액수가 800억∼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자금은 당시 총선에 출마한 수도권의 민주당 후보들에게 ‘실탄’으로 제공됐다는 주장이다. 홍준표(洪準杓) 의원은 “검찰의 현대 비자금 수사가 결과적으로 여권 내 비주류 세력을 겨냥하고 있어 민주당의 주류-비주류 역학관계를 뒤집는 동인이 될 것이다”고 분석했다.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