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태수/미술계는 아직도 배고픈데

  • 입력 2003년 8월 8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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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미술품 거래의 일시소득세법’이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법안은 1990년 당시 한국경제의 활성화에 힘입어 땅 투기 조짐이 극성을 부리고, 그 여파로 일부 부유층에서 미술품(고미술품 포함) 투기 조짐이 일자 정부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취한 일종의 경고조치였다.

▼현실 외면한 양도세 부과案 ▼

그러나 전 미술계가 ‘미술시장의 위축과 미술인의 창작의욕 저하 초래’ 등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기에 세정당국이 1993년, 96년, 98년, 2001년에 걸쳐 그 실시를 유예해 왔다. 세법 내용도 처음엔 ‘미술품 양도소득세’였으나 나중에는 일시 재산소득으로 봐 종합과세하는 것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 미술인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진실로 이 정책의 실시에 앞서 국민의 편에 서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고 연구해 봐 달라는 것이다. 우선 고려할 점은 1990년대의 한국사회나 경제여건이 2003년의 오늘과는 현저히 다르다는 것이다. 모든 상거래에서 양도차액이 생겼을 때마다 일률적으로 세금을 거둬들인다는 지극히 단세포적인 경제논리를 편다면, 증권시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양도차액에 대해 정부는 과연 세금을 제대로 거두고 있는가 묻고 싶다. 아마 산업자본화 논리를 펴면서 보호정책 운운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처해 있는 오늘날 한국미술과 미술시장은 어떠한가. 첫째, 우리의 미술시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생겨난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고가의 미술품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해 대부분의 거래는 양성화 내지 투명화되고 있다. 그리고 화가는 창작에 따른 소득세를, 화랑과 고미술품점은 거래에 따른 사업소득세를 각기 성실히 납부하고 있는 현실은 이미 세정당국이 환하게 꿰뚫고 있는 바와 같다.

둘째, 미술시장 규모다. 이웃 일본의 미술시장은 호경기였던 1995년경 연간 매출외형이 약 15조원에 이르렀다. 최악이라며 거품이 제거된 작금의 외형 금액도 1조원 이상이라고 한다. 그런 여건의 일본에서 미술품의 양도소득세는 일반 토지, 건물, 주식과는 별도로 분리과세를 하고 있다. 소득금액 중 50만엔의 특별공제를 제한 나머지 소득에 대해 차등세율(15∼31%)을 적용하고, 거기에다 작품 보유기간에 따른 차등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미술시장 전체 외형은 고작 250억원 안팎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서울의 고가 아파트 10채 값에 불과한 작은 금액이다. 이런 척박한 미술시장에서 이 법안이 통과된 뒤 그림을 구매하는 컬렉터들에게 빠짐없이 실명제를 요구할 경우, 애호가 누구도 미술판을 기웃거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생애에 2000만원 이상의 양도차액을 남길 정도의 유명작가가 되기란 정말 지난한 일이다. 잘해야 전체 작가 중 1% 미만일 것이다. 나머지 불확실성에 근거를 둔 99% 작가들의 작품은 누가 눈여겨봐 줄 것인가.

셋째, 한국의 미술교육현장은 어떠한가. 해마다 7000명 이상의 미술계열 전공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막상 산업디자인 분야 외엔 발붙일 곳이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앞으로 이 법안이 통과되어 미술계 전체가 메말라 버린다면 ‘21세기 한국문화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나갈 예비 미술인들의 교육은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스럽다.

▼문화부양책이 더 급하다 ▼

오늘날 우리 사회 전체의 공통목표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당기자는 것이다. 이러한 여망을 하루빨리 달성하기 위해서는 문화를 부흥시키고 진흥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당국은 지금부터라도 문화부양책을 어떤 정책보다 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이러한 부양책에 힘입어 미술문화 전반에 활기가 생겨난다면 우리의 미술시장도 되살아날 것이다.

미술시장이 적어도 외형적으로 연간 몇천억원 규모로 성장할 시기에 가서 다시 이 문제를 논의해도 결코 늦지 않다.

문화는 부양 내지 진흥책만 필요로 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그러한 우를 범하지 않는 정부의 현명한 선택과 세법정책을 기대한다.

김태수 한국화랑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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