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사설-칼럼 법적대응']“대통령 언론관은 아무도 못말려”

  • 입력 2003년 8월 4일 19시 06분


“언론 얘기만 나오면 아무도 대통령을 못 말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일 국정토론회에서 언론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여과 없이 쏟아내자 이 자리에 참석했던 일부 장차관들은 상당히 놀란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이 “언론의 횡포에 굴복하거나 타협하면 지도자 자격이 없다. 지도자가 이런 횡포에 맞설 용기가 없으면 장관 그만둬라. 좋은 게 좋다고 하면 지도자 자격이 없다”고 강조했을 때는 회의장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 참석한 청와대 핵심 참모들은 장차관들과는 달리 별로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윤태영(尹太瀛) 대변인은 “대통령께서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을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며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항상 해오던 말이어서 별로 새롭게 들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참모들은 노 대통령이 언론 얘기만 꺼내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우를 직접 체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둔감해진 상태라는 것.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관한 얘기를 섣불리 꺼냈다가 면박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다른 문제는 얘기가 잘 돼도 언론 문제만큼은 섣불리 ‘어떻게 하자’고 건의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부 참모들은 “언론과 긴장관계를 갖더라도 기자들과 등을 져서는 안 된다”며 신문사 사장이나 편집국장들과의 접촉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건의했다가 오히려 핀잔만 들었다는 후문이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도 “대통령이 다른 문제는 다 들으면서도 유독 언론 얘기만 나오면 ‘그 문제는 꺼내지도 말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간여하지 말라’고 말해 무안할 때가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에게 언론 문제를 얘기하는 참모들의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게 청와대 내부 분위기다.

2일 국정토론회에서도 노 대통령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1조 분임토의 발표에서 언론과의 접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변재일(卞在一) 정보통신부 차관이 브리핑을 할 때 대통령의 얼굴은 만족스럽지 못한 듯했다. 노 대통령은 변 차관의 보고가 끝나자 곧바로 “기자들 접촉은 권장할 것이 못 된다”고 면박을 줬다.

그러나 2조 분임토의를 발표한 최영진(崔英鎭) 외교안보연구원장이 ‘가판 구독 금지, 기자 접촉과 접대 금지’ 등을 주장하자 노 대통령은 중간에 박수를 유도하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 관련 발언 일지▼

△3월 7일=정부가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언론과 약간의 긴장관계를 유지할 필요 가 있다(신임 장관들과의 워크숍).

△3월 11일=앞으로 오보와의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국무회의).

△3월 12일=정부 각 부처는 정책상황 보고와 함께 자기 부처 업무와 관련된 언론보 도 중 오보성 기사와 왜곡보도에 대한 사안별 대응조치 내용을 보고하라(홍보수석실 업무보고).

△4월 2일=군사정권이 끝난 후에도 몇몇 족벌언론은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정 부’를 끊임없이 박해했고 나 또한 부당한 공격을 받아왔다(국정연설).

△4월 7일=언론이 정치권력을 탄생시키겠다는 생각이나 정부를 길들이겠다는 생 각은 버려야 한다(신문의 날 기념사).

△5월 1일=언론이 나를 대통령 대접을 한 적이 있느냐. 언론이 어느 정권에 대해 지금처럼 적대적인 기사를 쓴 적이 있느냐. 신문만 예외적인 대접과 특권을 누 리고 있다(MBC 100분토론).

△5월 3일=언론과 싸우고 싶어 싸우는 게 아니고 자꾸 싸울 일이 생긴다(차관급 워크숍).

△6월 13일=언론이 한 번도 잘 했다고 칭찬하지 않았다. 일부 언론이 내가 대통 령이 안되게 온갖 일을 다 했으나, 나는 대통령이 됐다(국세청 간부 간담회).

△6월 25일=우리 언론은 갈등을 비춰야만 뉴스 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잘한 것은 빼고 갈등만 보도한다(국가유공자 오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