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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4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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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통천 출신인 정 명예회장은 89년 기업인 자격으로 처음 방북했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는 98년 11월 처음 만났다. 김 위원장은 당시 “(정 명예회장의) 거동이 불편하셔서 내가 왔다”며 현대 일행이 머물고 있는 백화원 초대소를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직접 방문할 정도로 정 명예회장을 우대했다. 두 사람은 1시간 동안 만나면서 서로를 ‘명예회장 선생’과 ‘장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 현대아산측의 설명이다.
당시 면담이 끝난 뒤 ‘(금강산) 총석정’을 그린 그림을 배경으로 정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 부자, 김 위원장이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김 위원장은 “연장자가 중간에 서야 한다”고 말해 몇 차례 사양과 권유가 오간 끝에 결국 정 명예회장과 김 위원장이 번갈아 중앙에 서서 기념촬영을 했다.
김 위원장은 이후 2000년 6월까지 정 명예회장을 세 차례 만났으며, 정몽헌 회장은 2000년 한 해에만 세 번을 만나 줬을 정도로 현대 일가를 남다르게 대했다.
북한은 98년 6월 정 명예회장이 소 501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통해 방북했을 때도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송호경 부위원장 등을 보내 “따뜻한 혈육의 정으로 맞이한다”며 환대했다.
같은 해 10월 정 명예회장이 가족들과 함께 방북했을 때도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면 첫 기사로 정 명예회장 일행의 방북 소식과 일정 등을 비중 있게 다뤘다.
물론 이 같은 환대는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퍼주기 논란’을 낳은 것처럼 현대그룹의 공격적인 대북투자를 북한이 환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통일부 당국자는 4일 “그런 논란과 무관하게 북한 당국과 정 명예회장 부자가 쌓은 신뢰가 남북관계 개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의 환대는 정 명예회장이 2001년 3월 타계했을 때 조문단 파견으로 이어졌다. 또 올 초 대북송금 특별검사 수사 때도 북한은 “현대가 우리측에 준 돈은 순수한 경협자금”이라며 현대아산을 적극 옹호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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