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김근태 고문의 '盧 걱정'

  • 입력 2003년 7월 31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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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26일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이며 대선후보 주자 중 한 명이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기자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인제(李仁濟) 상임고문처럼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정치풍토가 문제다. (이 고문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나 나가야 할 사람이다. 정치는 대의와 가치를 좇는 것인데, 나는 (이 고문과 달리) 늘 정도(正道)를 걸어 왔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이 고문의 정체성 문제를 공격해 당내 ‘이인제 대세론’을 차단하기 위한 발언이었다.

며칠 뒤 사석에서 만난 민주당 김근태(金槿泰) 고문은 기자에게 “솔직히 노무현의 용기가 부럽다. 아무리 경쟁자지만 매일 아침 고문단 회의에서 만나는 당 동지에게 나는 그런 말을 잘 못하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김 고문에 대해 경선캠프 참모들조차 “신중함이 지나쳐, 답답할 정도다. 정치인으로선 치명적 약점이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김 고문이 지난달 28일 기자와 만나 강한 어조로 노무현 정부의 위기를 걱정한 것은 그의 ‘답답한 성격’을 잘 아는 기자에겐 ‘충격’이었다(본보 7월 30일자 A5면 참조). 김 고문은 노 대통령의 대표적 잘못으로 ‘위기를 위기라고 진단하지 않는 것’과 ‘정체성의 혼란’을 꼽고 노 대통령의 임기를 걱정하는 여론까지 전하며 ‘정말 위기’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고문의 걱정은 노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겐 달가운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본보 보도 이후 김 고문의 홈페이지(www.ktcamp.or.kr)에는 그를 비난하는 글 등이 30일 하루에만 2000여건, 31일에도 1000여건이 올라왔다.

한 네티즌(필명:잘난 김근태는?)은 “노 대통령 욕하지 말고, 자기 처신이나 똑바로 해라”고 말했고, 다른 네티즌(필명:netpian)도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자신을 광고하면 지금의 시국이 나아지느냐. 총체적 위기가 노 대통령 때문이냐”고 주장했다.

물론 지지하는 글도 적지 않다. ‘장길산’이란 필명의 네티즌은 “지금 누구도 노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김근태 말고 누가 노무현의 성공을 고민하더냐”고 말했고, ‘애국민’이란 필명의 네티즌은 “김 고문처럼 용기 있는 발언과 처신을 하는 사람이 많아야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김 고문이 노무현 정부를 걱정하는 말을 했던 것은 양쪽 지지자간의 사이버 논쟁을 불러일으키자는 게 아니었다. 그는 기자에게 “아무리 외쳐도 청와대에선 아무 메아리가 없다. 그래서 늘 허탈하다”고 말했었다.

부형권 정치부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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