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非核 카드로 北核 우회압박

입력 2003-06-12 18:47수정 2009-09-2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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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마약 미사일 위조지폐 수출과 일본인 납치문제 등 ‘비핵(非核) 범죄’에 대한 대응방안이 국제무대에서 본격 거론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이 같은 분위기는 북한 핵 해결을 앞두고 북한에 대한 비판적인 국제여론 조성에 활용되면서 앞으로 5자회담을 통한 해법논의 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 일본 등 서방 10개국이 12일 스페인에서 개최하는 핵 생화학무기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저지를 위한 국제회의는 이란과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겨냥한 것이다.

이 밖에도 호주 외무장관이 11일 “북한의 마약 및 미사일 운반선을 나포할 수 있다”고 말하고, 미국 정부가 “일본 빠찡꼬 자금의 북한송금을 제한하는 방안을 일본과 논의 중이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통일부 고위관계자는 미국의 우회전략에 대해 “(정상적인 나라에선 벌어질 수 없는 반(反)인륜적 이슈를 부각시킴으로써) 북한 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국제여론을 이끌어내고,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비판도 잠재울 수 있는 효과를 노린 이중 포석이다”고 풀이했다.

8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양국은 국제테러, 마약 밀매 등 국가가 개입된 범죄행위 대책에 적극 협력해나간다”는 합의가 도출됐다. 그러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기자들의 추가질문에 “마약 단속 문제가 북핵 문제와 결부돼 압박수단으로 오해될 수 있으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노 대통령의 답변에는 이도저도 할 수 없는 한국 정부의 고민이 담겨 있다. 같은 민족이자 북한 핵 해법이 강경 위주로 흐를 경우 한국이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국제사회의 대북 비난과 압박에 적극 동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외교통상부 고위관계자는 11일 “한미일 3국이 12, 13일 하와이에서 열리는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회의에서 (북핵 이외의) 현안도 논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협의된 바 없다”고 물러섰다. 미국 일본이 관심을 갖는 ‘현안’을 거론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 때문에 한국이 북핵문제의 당사자이면서도 서방국가가 주도하는 북핵 관련 국제협의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한국 미국 북한 정부의 관련 발언▼

<한국>

▽“(국가개입 범죄에 한일 양국이 적극 대처한다는 정상회담 합의는) 마약 단속 등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과 결부돼 이해되는 경우 압박수단으로 오해될 수 있으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 6월9일)

▽“미국 등 서방이 북한의 마약 위조지폐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국제여론 악화에는 역할을 할 것이다.”(통일부 고위관계자, 6월 초)

<미국>

▽“얼마전 호주에서 (북한의) 마약이 적발됐다. 북한과의 회담에서 마약 등 다른 현안들도 논의할 방침이다.”(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 4월29일)

▽“불행하게도 북한은 마약과 미사일을 거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는 북한처럼 작심하고 국제적 합의를 어기는 나라들을 다룰 좀 더 효율적인 수단을 필요로 하며,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더욱 공격적으로 일해 나갈 계획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 5월12일)

▽“미국은 북한에 봉쇄조치를 취할 계획은 없지만 북한의 마약 밀반입 등 불법 활동을 저지하는 것은 적절한 조치다.”(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 대사, 6월11일)

<북한>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이 핵 문제와 (일본인) 납치 문제를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굴한 대미 자세다. 대가를 단단히 치를 것이다.”(정무원 기관지인 민주조선, 5월10일)

▽“핵 물리학자 경원하 박사의 망명설, 위조화폐와 마약 유포설 등은 국제적인 제재와 봉쇄를 가하기 위한 미국과 남조선 모략가의 술책이다.”(북한 조선중앙통신, 5월26일)

▽“일본이 납치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과거청산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음흉한 속셈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6월12일)

▼北 5자회담 수용할까▼

한미일 3국은 12, 13일(현지시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리는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형식에 관해 집중 조율한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북미중 3자회담의 후속 회담은 한국 일본이 추가로 참여하는 5자회담 형식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일본은 이에 따라 5자회담 수용을 촉구하는 한편 대북(對北) 압박 움직임도 보이는 등 양면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한국 일본이 참여하는 5자회담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대북제재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은 5자회담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은 밝히지 않고 있다. 북한은 오히려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움직임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18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회의에 백남순(白南淳) 외무상을 참석시키지 않고 허종(許鍾) 순회대사를 파견키로 한 것도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북한이 5자회담을 계속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국제사회가 ‘준법 운동’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수출과 마약 거래 등 외화벌이 창구를 실력으로 막는다면 경제적으로 버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북한이 다자회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징후도 있다.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이 9일 “3자회담에 한국과 일본이 (추가로) 참여하는 데 대한 북한의 거부 자세가 약화하고 있다”며 5자회담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앞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도 1일 G8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북미 양자회담이 보장된 다자회담에 북한이 참여할 의사를 간접으로 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최근 미국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핵 억제력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하고 대일 비난을 강화하고 나선 것은 이미 내부적으로 다자회담 참여 방침을 결정한 뒤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TCOG 회의의 결정을 지켜본 뒤 5자회담에 나서든, 다시 장고(長考)에 들어가든 입장을 정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하와이=한기흥기자 eligius@donga.com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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