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로서 당연히 해야 할 부처간 정책조정까지 대통령도 아닌 대통령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아 나설 정도라면 의전총리라는 말도 과분하다. 차라리 ‘로봇총리’라는 말이 어울릴 듯싶다. 역대 정부에서도 총리가 제대로 대접받은 적이 드물지만 현 정부에서는 홀대 수준을 넘어 아예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를 입 밖에 낸 문 실장의 의식상태는 간단히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무례하기도 하지만 책임회피 의도도 엿보인다. 사실 중요한 정책조정은 뒷전에서 청와대가 다 하면서 총리더러 앞에 나서라는 것은 문제가 생기면 책임만 지는 방탄총리가 돼 달라는 뜻일 수 있기 때문이다.
총리가 그 지경이라면 청와대에 튼튼한 줄이 없는 장관들의 국정소외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한목소리로 비판하는데도 굳이 행정경험이 없는 정치권인사들을 각 부처에 정책보좌관으로 심으려는 것도 청와대가 각 부처를 직접 장악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총리를 질타하고 그것을 자랑하는 대통령비서실장이 있는 한 내각에 총리의 영이 설 리 없다. 장관이나 공무원이나 모두 총리는 외면하고 청와대만 바라볼 텐데 총리의 ‘책임행정’이 가능할 리도 없다. 그러니 시어머니 역할을 충실히 해 장관들의 기강을 확실히 잡고 필요하면 헌법에 보장된 장관해임건의권을 적극 행사하겠다는 고 총리의 다짐이 공허하게 들린다. 노무현 대통령은 문 실장을 엄히 질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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