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연천/國政시스템 헛돈다

  • 입력 2003년 5월 8일 18시 22분


전국운송하역노조 산하 ‘화물연대’의 실력행사와 물류대란 사태의 귀추를 지켜보고 있는 많은 국민들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이번 사태가 초래할 철강업계의 피해나 국민 경제적 손실 때문만이 아니다. 이번 사태는 교권(敎權)을 둘러싼 전교조와 교장단의 갈등, 국가정보원장과 국정원 기조실장 임명에서 보여준 소모적 좌우(左右) 논쟁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 도처에 잠복해 있는 극한대결의 한 양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나 정치권이 앞으로 불거져 나올지 모를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에 얼마나 잘 대비하고 치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다.

▼‘물류대란’ 일 터진뒤 법석 ▼

이번 화물차 파업으로 인한 물류대란이 파국 직전까지 이르게 된 이유는 분명 생존권 쟁취를 위해서라면 실력행사를 마다하지 않는 운송종사자들의 문제 해결방식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물류수송체계의 구조적 난맥상과 그동안 이의 개선을 수수방관해온 정책당국의 안일함이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근대적인 지입제를 포함한 불합리한 화물운송체계의 혁파를 생존권 차원에서 내걸고 있는 화물차 운전사들이 ‘집단적 실력행사 만능주의’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조만간 불법파업으로 돌입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견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물운송체계에 대한 제도개혁 노력은 고사하고 이들의 현안 개선 요구조차 등한시한 것은 불법파업 못지않게 비판받아 마땅한 전형적인 ‘정책실패’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야말로 문제가 극단적인 파열음을 내면서 악화되어 사회적 이슈로 떠들썩하게 될 때에 이르러서야 문제해결에 나서곤 했던 과거 정부의 행태가 아직도 불식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국민들은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새 정부가 출범 이후 시스템개혁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관료들이 겉으로만 긴박한 행보를 취한 척한 것에 실망하고 있다. 피부과 질환의 상당부분은 피부 자체보다는 신체의 내분비 순환기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관련 내과 전문의의 진단과 처방이 결부될 때 근본 치유가 가능해진다는 게 피부과 전문의의 설명이다. 국정운영 역시 격의 없는 토론과 현란한 국정홍보 못지않게 갈등과 대결의 근본원인을 냉철하게 진단·분석하는 작업이 그 출발점이어야 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실현 가능한 전략적 대안을 도출해내 이를 인내심을 갖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가 그나마 교훈을 얻은 것이 있다면 가뜩이나 불안한 국민경제를 한 차례의 파업이 강타할 수 있다는 우려를 국민 대다수가 갖게 된 점이다. “노사대결과 불법파업이 극복되지 않으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밝지 않다”는 외국인 투자자의 말이나 “파행적 노사관계가 계속된다면 공장을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로 이전하겠다”는 우리 중소기업 사장의 넋두리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만에 하나라도 외국자본의 이탈이나 국내 생산시설의 해외유출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면 새 정부 국정목표의 하나인 지방분권화와 균형발전노력은 그만큼 무력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성장 동력원이 소진되어 고용시장이 위축된다면 그 비용은 누구에게 전가될 것인가.

▼노사문제 대통령만 쳐다보나 ▼

이번 사태에서 또 소관부처 장관 등 공직자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하고 있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에 ‘코드’를 맞추다가 소신껏 대응하지 못한 측면은 없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그동안 몇 차례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공직자들은 자생적 문제해결 능력 없이 팔짱만 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특히 노사문제에서는 노 대통령이 전문가란 생각에 나서기 어려웠다면 더 큰 문제다. 근로현장에서 정치적 지도력을 잉태한 노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이젠 시스템으로 노사 문제를 풀고 다른 국정개혁도 해나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번 사태는 일깨워주고 있다.

오연천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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