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적 현안에 대해 무덤덤한 일본 사회의 최근 흐름을 감안하면 이날 집회는 확실히 ‘이상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참석자들은 북한을 ‘함께 상종할 수 없는 나라’라고 규탄하면서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우익의 기수로 꼽히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는 “정부는 국민의 피해를 뻔히 보면서도 왜 보복을 하지 않는가”라며 대북 강경책을 주문했다. 북한을 향한 울분과 혐오가 집회장 분위기를 지배했다.
비슷한 시간, 자민당 공명당 보수신당 등 일본의 연립여당은 늦어도 이번주 안에 중의원에서 유사관련법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 법은 전시상황을 가정해 민간물자 징발과 국민의 기본권 제한을 명시하고 있다. ‘적국의 공격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총리가 긴급명령권을 발동해 계엄에 준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에는 적국이 어느 나라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여권 수뇌부는 북한을 의미한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지난해 여권이 이 법안을 처음 발의했을 때 야당은 과거 군국주의를 연상시키는 악법이라며 극력 반대해 통과를 저지했다. 하지만 북한의 일본인 납치가 사실로 확인되고 핵문제마저 불거지자 반대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우익세력들은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는 북한 핵개발 소식을 빌미로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방위청 장관이 자위대 무기사용 기준의 완화와 적 기지에 대한 선제공격론을 흘리더니 급기야는 일각에서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데 일본만 갖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아사히TV의 저녁뉴스 앵커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60년 가까이 일본 열도에서 전쟁이 없었는데, 새삼 전쟁위협론이 확산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일본이 군국주의 분위기로 회귀하는 데 북한이 결정적 빌미를 제공했다”며 장탄식을 하고 있다.
북한 핵개발에 따른 미국의 공격 가능성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에 분명 ‘눈앞에 닥친 위기’이다. 하지만 여론의 관심이 미국의 북한 공격 가능성에만 쏠린 사이에 일본은 슬금슬금 재무장에 나서고 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이라고 경계를 늦추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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