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국정원 폐지' 속내는 "氣싸움 盧에 밀릴수 없지"

  • 입력 2003년 5월 4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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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고영구(高泳耉) 국가정보원장, 서동만(徐東晩) 국정원 기조실장 임명을 강행하자 한나라당이 이에 반발해 초강수로 내놓은 것이 ‘국정원 폐지법’ 추진이다.

한나라당은 연일 논평을 통해 “국정원의 파행인사는 국회를 모독하는 것이며 오기와 독선인사”라고 비난하면서 “국정원을 폐지하기 위해 법안을 준비 중”이라며 엄포를 놓고 있다. 국회를 무시한 청와대의 국정원 인사에 대한 ‘대응’으로 국정원을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다.

일단 외견상 한나라당의 초강수는 ‘엄포’로만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은 4일 국정원 폐지를 위한 입법 일정까지 밝혔다.

이주영(李柱榮) 제1정조위원장은 “정형근(鄭亨根)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국정원 폐지 및 해외정보처 추진 기획단’을 구성해 6일 첫 회의를 가질 예정”이라며 “기획단에선 정부조직법에 있는 국정원 설치 근거조항을 고치고 해외정보처 신설법안을 만들어 이르면 5월 중 국회에 제출하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 그는 또 “19개 조문으로 된 국가정보원법을 폐기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은 국정원의 국내보안, 대공, 대북정보, 해외정보 기능 가운데 해외정보 기능은 대폭 확장해 해외정보처가 수행하게 하고 나머지 기능은 검찰 경찰과 국군기무사, 정보사, 통일부 등으로 이관토록 한다는 법안의 골격도 마련해놨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국회 과반의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국회에서 국정원 폐지 입법절차를 밀어붙이는 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게 당 안팎의 시각이다.

우선 한나라당의 ‘속내’도 실제 국정원 폐지에 있다기보다 청와대와의 ‘기(氣) 싸움’에서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데 있다.

물리적으로도 국정원 폐지법안을 5월에 제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5월 중으로 정부조직법 개정, 국정원 폐지 및 해외정보처 신설 법안 등을 한꺼번에 손질한다는 것이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특히 6월로 예정된 당 대표 경선을 앞두고 국정원 폐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당력을 집중하기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비록 법안을 제출한다고 해도 여당의 반발과 여론의 시비, 그리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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