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국정 TV토론]민감한 문제엔 형식적 답변만

  • 입력 2003년 5월 2일 01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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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1일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TV토론을 시작하기 직전 패널로 참여한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와 악수하고 있다.김경제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1일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TV토론을 시작하기 직전 패널로 참여한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와 악수하고 있다.김경제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1일 밤 TV토론에서 민감한 현안들에 대해서는 “말하기 곤란하다”며 말을 아끼는 태도를 보였다. 집권 2개월 동안 ‘다변(多辯)’으로 인해 빚어졌던 여러 논란을 의식한 듯했다.

노 대통령은 측근인 민주당 안희정(安熙正) 국가전략연구소부소장의 나라종금 로비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보고 시점과 보고 내용 등에 대한 잇따른 추궁성 질문에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먼저 말하면 신뢰성(공정성)이 손상될 우려가 있으므로 입을 다물고 참고 있다”며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그는 ‘호남소외론’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답변 드리기가 어렵다”고 비켜 나갔고 국가정보원 개혁과 관련, 호남 세력에 대한 인적청산이나 문책여부에 관한 질문에는 “잘 믿지 않겠지만, 어떤 지역 인사가 분포돼 있는지, 적임자인지 세세히 살피지 않았다”며 역시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민주당 개혁파 의원들이 추진 중인 신당 창당 문제에 대해서도 민감성을 의식한 듯, ‘비켜가기’식 답변으로 일관했다.

노 대통령은 이라크전 파병에 대한 한 초등학교 교사의 질문에도 “선생님의 입장과 대통령의 입장이 다르다”며 애매하게 답변했다. 그는 이 교사가 “이라크전 파병에 대해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학생들에게 가르치겠느냐”고 묻자, “교사도 학생들 앞에서 아무 얘기나 막할 수 없듯이 대통령도 토론에서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 피해갈 수밖에 없다”고 물러섰다.

토론 말미에 한 토론자가 “대통령은 토론의 달인이다, 이 말에 기분 나빠하지 말라. 그러다 보니 말이 많다. 전교조와 관련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도 말이 많아서 그런 것 아니냐”고 묻자, 노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은 의사 전달의 수단인데, 말을 줄이려고 하니 (주위에서) 불편하다고 하기도 한다”고 인정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한 지 50일 지났는데, 국민 모두가 만족하는 것 같지 않고 썩 미더워하는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안도하고 미더워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참여정부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급한 것 아니냐. 제가 어릴 때 집을 짓는데 목수가 오전 내내 대패나 갈고 톱만 갈자 오전 내내 논다고 어머니가 투덜댔는데, 오후 되니까 집을 짓더라”며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한편 토론에 앞서 노 대통령과 토론자들은 뼈있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자리에 앉기 전 방청석을 보며) 안녕하세요. 너무 어려운 것 묻지 마세요”라고 하자, 서명숙 시사저널 편집위원은 “용비어천가를 하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어려운 질문을 하지 말아달라고 하면 (말이) 다르지 않으냐”라고 꼬집었다. 이에 노 대통령은 “방청석을 향해 그냥 인사로 한 것이다. 가만히 보니까 용비어천가 불러줄 분이 한 분도 없다”고 응수했다.

이날 토론에 대해 여야의 평가는 엇갈렸다. 민주당 장전형(張全亨) 부대변인은 “국정현안에 대한 솔직한 대화로 국민에게 친숙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줬다, 무엇보다 국민과편안한 대화의 시간을 가진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 의원은 “토론을 안하는 게 낫지 않았나. 대선 때는 다 들어내고 난타전을 벌이면서 결론을 도출했는데 오늘 토론에선 해법으로 내놓은 것이 없다. 동문서답식으로 답변하려면 왜 이 시점에 소중한 전파를 낭비하며 토론을 했는가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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