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전교조 反美교육' 제동

  • 입력 2003년 4월 22일 18시 44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2일 “전교조가 (학생들에게) 반전(反戰)사상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반미(反美)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반미는 국가적 관계이며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인데, 특정 교원단체가 국가적 공론이 이뤄지지 않은 사안을 가르쳐도 좋은 것인지 검토해 달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같이 지적하고 “교육인적자원부가 사실 여부를 파악해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송경희(宋敬熙)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노 대통령이 ‘반미 교육’에 제동을 걸고 나선 데에는 다음달 미국 방문에서 북한 핵문제와 한미동맹관계 등 민감한 사안을 논의해야 하는 상황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불필요한 오해를 사거나 국내에서 소모적인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비서실의 고위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언급은 북한 미국 중국간 3자회담의 개최로 북한 핵문제가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고, 한미간 긴밀한 공조관계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에서 반미논란이 재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교조는 그동안 일선 초중고에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문제와 이라크전쟁 등을 소재로 수업을 실시해 반미 감정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전교조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된 뒤 홈페이지에 반전 공동수업 자료집을 게재하고 일선 학교에 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료 중에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전쟁의) 이유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면 아무도 없다’는 등의 퀴즈를 냈다가 문제가 되자 이를 수정하기도 했다.

또 경기 고양시의 한 중학교 수업시간에 전교조 교사가 미군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한국 여성 ‘윤금이 사건’의 사진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보여줬다가 학부모들이 반발하는 등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교장이 이 교사의 수업을 중단할 것을 지시했으나 전교조가 반발하는 과정에서 사진이 외부에 공개돼 전교조가 “교육적이지 못한 수업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 14일 대구시교육청이 전교조의 반전 수업에 대한 현황 파악에 나섰다가 전교조가 수업권 침해라며 반발해 갈등을 빚은 적도 있다.

교육부는 사회적 현상을 수업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으나 교사 개인이 아니라 교과협의회에서 논의해 공동 자료를 만든 뒤 학교장의 승인을 얻어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일선 현장에서는 사실상 이를 통제하기 어려워 교장과 교사간에 마찰을 빚는 원인 중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교조 송원재 대변인은 “전교조는 반전 평화교육을 실시하는 것일 뿐 반미교육을 하는 것은 아니다”며 “전교조가 반미를 부추긴다는 일부의 주장은 왜곡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교조는 노 대통령 발언과 관련 이날 오후 늦게 성명을 내고 “전교조에 대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성급한 발언”이라며 “반전평화와 SOFA 개정 관련 수업은 인간의 존엄성과 동등한 국가관계라는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기 위한 것인데 일부에서 특정 표현을 문제 삼아 이를 반미의식화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손상된 한미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전교조를 희생양으로 삼아 미국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며 “정부와 일부 언론이 또다시 악의적인 비방을 일삼는다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논란 빚은 전교조 수업▼

○'부시 전쟁이유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바보' 퀴즈

○미군에 잔인하게 피살된 '윤금이 사건' 사진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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