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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2월 9일 19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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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갑종, 62년 제1보충역, 미하령(未下令).’
고건 국무총리후보자의 병역기록 중 남아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개인 병적기록카드는 보존기한이 지나 이미 파기돼 버렸기 때문이다.
병적기록만 살펴보면 고 후보자가 58년 징병검사에서 현역입영 대상자인 ‘갑종’ 판정을 받았으나 62년 제1보충역으로 빠진 뒤 줄곧 영장이 나오지 않는 미하령 상태가 계속됐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입영 및 병역의무 최종 면제 과정도 적법한 절차를 밟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 후보자의 해명을 수용하더라도 당시 징집대상자 중 절반은 영장을 받았다. 고 후보자는 왜 영장을 받지 않은 미하령 그룹에 속했는가. 고 지명자의 병역면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우선 입영대상?=고 후보자는 58년 서울대 재학 중 전북지구 병사구 사령부에서 최우선 현역 입영대상인 갑종 판정을 받았다. 키 180㎝, 체중 77㎏으로 건장한 체격이었다. 첫 징병검사 후 60년 3월 대학 졸업 때까지는 ‘재학 중 입영연기’ 규정에 따라 입영연기를 할 수 있었다.
첫 논란은 고 후보자가 대학 졸업 후 61년 12월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62년 6월 내무부 수습사무관으로 임용된 시기에 모아지고 있다. 59년 시행된 병역법 시행령엔 최우선 입영조건을 △갑종 △생년월일이 빠른 자(38년 1월생) △입영이 연기된 대학생으로 명시했다. 고 후보자는 우선입영조건 ‘3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는데도 정작 영장은 나오지 않았다.
98년 5월 이상호(李相虎) 당시 병무청장은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61년 현역 소요 인원은 19만명으로 징집불응자는 5만8000여명이었고, 62년 현역 소요 인원은 18만명으로 징집불응자는 1만5000여명이었다”고 밝혔다. 한 해 5만여명이나 징집되지 않았는데도 최우선 입영대상인 고 후보자에게 영장이 나오지 않은 배경이 미심쩍다.
고 후보자는 “당시는 4·19와 5·16군사정변으로 이어진 특수 상황이어서 직장에서 쫓겨난 많은 병역기피자들이 한꺼번에 입대하는 바람에 입영대기 중이던 나에겐 영장이 나오지 않았다”며 “5·16 직후 군사정부는 공무원 중에서 병역기피자들을 전원 색출해 내쫓았는데 병역기피 사실이 있었다면 공무원에 임용될 수 있었겠느냐”고 해명했다.
▽미하령 논란=고 후보자는 62년 10월 제1보충역으로 편입된 뒤 입영대기자로 분류됐다. 이때도 그는 보충역 중 최우선 보궐 입영대상에 올랐지만 최종 입영 면제를 받은 70년까지 영장이 나오지 않았다. 영장이 나오지 않은 미하령 상태가 계속됐다는 설명이다.
이 청장은 98년 국회 국방위에서 “당시 징집대상자 35만명 중 영장이 발부된 하령(下令)이 18만명, 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미하령이 17만명이었다”고 밝혔다. 병무청 관계자는 구체적인 징집 및 면제 기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징집 대상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압력이 개입된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으나, 고 후보자는 “당시엔 징집자원이 넘쳐 입대순위에서 밀려났다. 병무청장의 답변은 적법 절차에 따른 면제를 입증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청장이 미하령 규정에 대해 “미하령은 영장이 본인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 대목도 논란거리다. 영장은 나왔으나 주소가 확인되지 않아 영장이 본인에게 전달되지 않은 상태도 미하령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고 후보자는 “미하령은 명백히 영장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며 “당시엔 병역자원이 넘쳐 영장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며, 영장전달이 안됐다는 것은 억측”이라고 반박했다. 60년대 내무부 관료를 지낸 고 후보자가 영장 수령을 고의적으로 기피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고 후보자는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반박했다.
▽배후설 논란=한나라당은 고 지명자의 병역 면제과정에 부친인 고형곤(高亨坤·97) 전 전북대 총장의 ‘후광’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고 전 총장은 63년 당시 야당인 민정당(民政黨)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 민정당 사무총장까지 지낸 중진이었다. 당시 고 전 총장은 같은 호남 출신인 공화당 실력자 K씨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고 후보자는 “민주당 구파인 부친이 박정희(朴正熙) 정권에 반대한 야당 투사였던 점 때문에 다른 동기에 비해 보직 임용을 늦게 받는 불이익을 당했다”며 “공화당 인사가 뒤를 봐줬다는 얘기도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차남도 병역 의혹▼
고건 총리후보자의 차남 고휘(高輝·41)씨의 병역 면제 과정도 논란이 되고 있다. 첫 징병검사에선 현역 입영 판정을 받았으나 3년 뒤 재검에선 면제 판정을 받은 과정이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고씨는 서울대 전자계산기공학과(현 컴퓨터공학) 4학년이던 84년 징병검사에서 1급 판정을 받았다. 키 180㎝, 몸무게 70㎏으로 정상적인 체격이었다. 고씨는 85년 같은 과 대학원에 입학해 1년을 다닌 후 86년 휴학했다. 86년 한해 동안 서울대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은 뒤 87년 5월 전북지방병무청에서 5급 징집면제 판정을 받았다.
본보의 확인 결과 고씨는 징집면제를 받은 87년 상반기에 소프트웨어공학특론 운영체계특론 등 대학원 3학기 8학점을 취득했다. 고씨는 87년 1년 동안 두 학기를 마친 후 88년 2월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고씨를 지켜본 지도교수나 동료 선후배들은 “고씨가 병을 앓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학원 논문 지도교수였던 서울대 김종상(金宗相) 교수는 “본인이 아프다고 말했지만 학위 논문은 통과됐다”고 했고, 대학 후배인 K씨는 “90년 술자리에서 만났을 때도 아픈 모습이 역력했다. 병이 난 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측에 고씨의 치료 내용을 문의했으나 “개인 신상에 관한 것이라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당시 면제 과정에 의혹을 던지고 있다.
병이 있더라도 일정 기간 관찰이 필요하면 7급 재신검으로 판정해 1년 후 재신검을 받도록 돼 있는 근거(국방부령 377조)가 있고, 면제 판정을 받을 당시 대학원 수업을 받을 정도였으므로 7급 재신검 판정이 나와야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고 후보자측은 “86년 입원 치료를 받은 뒤엔 87년부터 통원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 지장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고씨는 대학원 졸업 직후 D전자에 근무했으며 94년 신세기통신을 거쳐 99년부터 SK텔레콤에서 네트워크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SK텔레콤측은 “경력사원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병역 면제사유를 밝히지 않더라도 입사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장남 벤처창업 논란▼
한나라당 인사청문 특위 위원들은 청문회 과정에서 고건 총리후보자의 장남 고진(高晋·42)씨의 벤처 스토리도 짚을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고씨가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벤처기업을 키웠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씨가 운영중인 ‘바로비전’은 고 후보자가 서울시장이던 99년 정보통신부 장관으로부터 ‘신소프트웨어상’을 받았다.
고씨는 미국 시러큐스대학에서 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직후인 94년 자본금 8000만원으로 소리와 영상을 압축 재생하는 ‘MPEG’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바로비전’을 설립했다. 친척들의 도움으로 출자금을 마련했다는 고씨는 5년 만에 기업 가치를 130억원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다시 자본잠식에 빠지는 등 부침을 겪었다.
이 회사는 정부가 IMT2000사업을 추진하면서 유망업체로 떠올라 99년 미래에셋 삼성생명 등으로부터 40억원대 자금을 유치했다. 이후 SK텔레콤 삼성전자 LG상사 등 대기업에 기술을 공급하거나 계약을 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잘 나가던 회사는 2000년 말 MP3플레이어 직접 생산에 나섰다가 사업이 실패하면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고씨는 “하드웨어(MP3플레이어) 제조에 손을 대 재고 부담과 부채가 늘었다”며 “지금은 모바일 기술 분야에 주력해 영업실적이 호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비전의 지난해 매출액은 23억원. 자본금 13억2000만원에 부채가 36억원으로 자본 잠식상태다. 이 회사는 벤처업계가 어려움을 겪던 지난해 다산벤처로부터 자본금의 20%를 액면가에 투자받기도 했다.
고씨는 “이미 수주한 물량으로 올 상반기 40억원대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며 “올해는 악성 채무를 갚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업 과정에서 고 후보자의 후광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고씨는 “아버지는 가족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결벽증이 있는 분이다”면서 “부친이 서울시장이던 때 서울시가 발주한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등 사업에는 마이너스 요인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부친보다 할아버지(고형곤 전 전북대총장) 밑에서 자랐다”고 강조했다. 고씨의 대학 친구인 벤처기업 사장 C씨도 “고진씨는 부친과 무관한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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