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에 줄대기 극성]총리물망 인사, 盧측근에 신년蘭선물

  • 입력 2003년 1월 14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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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의 ‘패가망신’ 경고 발언에도 불구하고 공직자들의 줄대기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한 관계자가 “공무원들의 로비가 이 정도인지는 상상도 못했다”고 놀랄 정도로 다양한 수법이 동원되고 있다.

▽줄을 잡아라〓은밀한 입각(入閣) 로비전이 치열하다. 새 정부 출범 때 장관으로 입각하기를 희망하는 K씨는 최근 부인과 함께 노 당선자가 존경하는 사회원로급 인사 K씨를 찾아가 식사를 함께 하면서 “혹시 노 당선자에게 추천할 기회가 있으면 저도 신경을 써달라”고 은근하게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또 다른 K씨는 입각을 노리고, 이미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쪽 인사들과 두루 접촉한 끝에 노 후보의 특보 자리를 따냈다. 차관 출신인 A씨는 최근 민주당 실세로 부상한 K의원을 만나기 위해 연락을 했으나 “K의원에게는 이미 장관급 인사들의 면담 약속 때문에 만나봤자 10분 이상 얘기를 나눌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면담을 포기했다.

총리 후보 물망에 올라 있는 K씨로부터 1월1일 느닷없이 난(蘭) 화분 선물을 받은 민주당 K의원은 “평소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다. 화분에 ‘축 승진’이라고 적혀있었는데, 내가 무슨 승진을 했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이달 6일 발표된 경찰 총경 인사 때 노 당선자와 가까운 인사들은 소나기 전화로비에 곤혹스러워 했다. 이미 인사내용이 확정된 상태인 4, 5일에도 민주당 신주류의 핵심 의원들의 사무실에는 “의원님을 1분만 만나게 해달라”는 승진 대상자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심지어 전문 청탁 브로커까지 의원실 주변을 맴돌며 보좌진에게 “의원님과 연결시켜주면 적지 않은 사례를 하겠다”며 접근했다.

▽노 당선자측과 공직자들의 줄다리기〓청탁을 뿌리치려는 노 당선자측 인사들과 줄을 대려는 공직자들 사이에 갖가지 해프닝도 생겨나고 있다.

인수위 인선이 한창일 때 정부 부처의 한 공직자는 노 당선자측 핵심관계자 L씨의 집에 고가의 선물을 보내고 “잘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L씨가 선물을 돌려보내고 “노 당선자가 ‘청탁하면 패가망신’이라고 한 사실을 잊었느냐”고 경고하자 이 공직자는 며칠 뒤 “잘못했다.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친필 반성문을 보내왔다. L씨는 자신의 집에 공무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자 아예 부인에게 “낮에도 집에 있지 말고 나가 있으라”는 외출령(外出令)을 내려놓았다.

노 당선자의 핵심측근인 또 다른 L씨는 대선 직후 온갖 인사청탁 전화가 걸려오자 최근에는 휴대전화를 받는 아르바이트 학생을 고용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과 용건’을 확인한 뒤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발신번호가 찍히지 않는 별도의 휴대전화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노 당선자의 일부 측근인사들은 아예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다.

▽북적대는 인수위〓14일 공기업에 근무하는 한 간부는 대통령직인수위의 모 위원실을 찾아와 “곧 인사가 있는데 명함이라도 놓고 가게 해달라”며 명함 수십장을 직원에게 건넸다. 직원이 “1장이면 되지 왜 여러 장을 주느냐”고 반문하자 그는 “위원님이 바쁘시면 다른 위원님들에게라도 꼭 전해달라. 아니면 보좌관님이라도 아는 분들에게 그냥 나눠주시면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간청했다.

며칠 전에는 경찰의 경무관급 모 인사가 정복 차림으로 인수위 사무실에 불쑥 찾아와 “경찰 개혁에 관한 나름대로의 아이디어가 있다. 인수위원장을 뵐 수 있도록 해달라”며 건의서를 전달하려다 경호원들과 가벼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임채정(林采正) 인수위원장은 기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모교인 고려대 출신 인사들이 무차별적으로 전화를 걸어온다. 빨리 인수위가 끝나야지 살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대학 교수 출신 인수위원 모씨도 “자신을 알리려고 인사하는 전화가 하루에도 10여통 이상 걸려와 일을 못할 정도다”고 털어놨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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