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당선자 ‘중·대선거구제’ 발언 왜 했나

  • 입력 2002년 12월 23일 23시 00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23일 “2004년 총선을 거쳐 국민의 승인을 받은 정당이 진정한 의미의 집권당이 되는 것”이라며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강조했다.

그는 이날 민주당의 마지막 선대위 전체회의에서 이같이 밝히고 “중·대선거구제로 지역적 편중성이 극복됐을 때, 2004년에 과반수 정당 또는 연합에 총리를 넘기겠다는 (나의) 약속은 여전히 지켜져야 하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일종의 협상 카드를 던진 셈이다.

노 당선자는 이미 대선 공약에서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고치고,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1인 2표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역 갈등과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를 극복하고, 국민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중·대선거구제는 한 지역구에서 2∼5명의 국회의원을 한꺼번에 뽑는 제도다. 현행 한 지역구에서 한명만 뽑는 소선거구제와는 달리 중·대선거구제에서는 2, 3등만 하더라도 당선될 수 있기 때문에 정치 신인이 상대적으로 쉽게 정계에 진출할 수 있다. 따라서 노 당선자가 중·대선거구제를 들고 나온 것은 ‘정치권 물갈이’차원의 고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 당선자는 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민주당〓호남당, 한나라당〓영남당’이란 지역구도 중심의 정치를 깰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노 당선자의 부산지역 득표율이 29.9%에 달했기 때문에 민주당으로서는 영남에서 일정 의석 이상을 확보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원내 제1당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는 것을 알려졌다.

그러나 노 당선자의 구상대로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11, 12대 총선이 중·대선거구제로 치러진 뒤 13대 때부터 현행 소선거구제로 바뀐 배경에는 지역주의를 정치적 기반으로 활용하려는 3김 정치가 있었다. 즉 의원 배지를 다는데 현재의 지역구도가 유리한 영호남 지역 의원들의 적지 않은 반발이 예상된다.

한나라당도 노 당선자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일단 신중한 반응이다.

이규택(李揆澤) 원내총무는 “왜 갑자기 중·대선거구제 얘기냐. 민주당을 제1당으로 만들겠다는 의도 아니냐”며 반대 의사를 표시했고, 원희룡(元喜龍) 미래연대 공동대표도 “노 당선자가 지역통합의 명분을 내세워 인위적 정계개편을 하려는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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