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노무현]이호철/서민아픔 아는 합리주의자

  • 입력 2002년 11월 27일 18시 38분


‘사람사는 세상.’

1988년 노무현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의 구호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는 대통령 후보가 되었지만 변한 게 없다. 여전히 사람 사는 세상을 말하고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외치고 있다.

돈 잘 버는 평범한 ‘변호사 영감’이었던 그는 81년 처음으로 시국 사건인 부림(釜林)사건 변호를 맡았다. 우리는 자신의 분노를 이야기했으나 그는 분노만으로 변호하지 않았다. 우리를 붉게 물들였다는 금서(禁書)들을 다 읽고 나서 왜 우리가 좌경용공이 아닌지를 법정에서 밝혔고, 우리들의 분노는 정당하다고 변호했다.

2년 뒤 출소한 우리를 따뜻하게 맞은 그는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인간적인 인권변호사로 변해 있었다. 삼겹살과 소주를 앞에 두고 밤늦도록 시국토론을 했고, 때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지 말라’며 걱정하기도 했다.

87년 6월 항쟁 당시, 가톨릭 산하 비밀인쇄소에서 찍은 수십만장의 ‘직선제 쟁취’ ‘호헌철폐’ 유인물을 차가 없어 옮길 수가 없었다. 새벽에 그는 손수 승용차를 운전해 옮겨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경남 거제도 대우조선에서 분신자살 사건이 생겼으니 진상조사를 위해 노무현 변호사를 오게 해달라는 한 통의 전화에, 새벽잠을 깨 흔쾌히 직접 차를 몰고 달려갔던 그는 이 사건으로 구속돼 변호사 자격까지 정지 당했다.

그는 참 힘들게 정치를 한다. 그냥 시류에 따르지 않고, 원칙과 상식에 근거해 정치를 하기 때문이리라.

그는 서민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낄 줄 아는 평범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다. 그가 유난히 눈에 띄게 커 보이고, 과격해 보이는 것은 시류에 따라 사는 우리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난쟁이 나라에 간 걸리버처럼….

이호철 (부산 배재여행사 대표·부림사건 관련 구속자)

<필자인 박우동 전대법관과 이호철씨는 각각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자체적으로 추천했습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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