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수 총리서리 검증 上]국정 수행능력…30년 법관

  • 입력 2002년 9월 25일 18시 57분


25일 오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마치고 귀국한 김대중 대통령이 서울공항으로 마중나온 김석수 국무총리서리(오른쪽)와 악수하고 있다.-연합
25일 오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마치고 귀국한 김대중 대통령이 서울공항으로 마중나온 김석수 국무총리서리(오른쪽)와 악수하고 있다.-연합
《김석수(金碩洙) 국무총리서리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10월 1, 2일 이틀간 열린다. 4일에는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김 총리서리의 법관시절 주요 판결 내용, 중앙선관위원장으로서의 선거관리 활동, 현 정부와의 관계 등을 통해 본 국정 수행 능력과 재산형성과정, 변호사 수임사건의 특성과 성실 납세 여부, 자녀들에 대한 재산 편법 증여 의혹 등을 두 차례의 ‘지상청문회’를 통해 검증한다.》

▼판결 살펴보니▼

김 총리서리는 1963년 부산지법 판사로 부임한 뒤 97년 대법관을 퇴직하기까지 30여년간 법관으로 재직했다. 사회생활의 대부분을 법관으로 보낸 그의 성향과 면모는 판결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판결을 통해 드러난 김 총리서리의 성향은 분야에 따라 크게 다르다. 노동과 인권분야에서는 ‘진보적’인 성향을 드러냈으나 성(性) 풍속분야에서는 ‘보수적’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의 판결은 진보 보수를 떠나 ‘법의 절차적 정의(적법 절차·due process of law)’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노동과 인권▽

법을 입법 취지에 맞게 적극적으로 해석하겠다는 진취적 의지가 판결문 곳곳에서 엿보인다.

복수노조가 허용되지 않던 93년 노동부가 “전국연합노련과 회원이 일부 중복된다”며 전국병원노동조합이 제출한 노조설립신고서를 반려하자 그는 “신고서를 받아 줘라”며 노동부 패소 판결을 내렸다. 노동조합법의 중복노조 금지조항은 기존 노조의 단결력 약화를 막기 위한 것으로 노동부가 이를 무기 삼아 무조건 노조설립을 막는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였다.

또 김 총리서리는 노조에 운영비를 지원한 ㈜제물포버스여객이 사용자측의 노조운영비 지원 금지를 규정한 노동조합법을 위반했다며 중앙노동위원회가 낸 소송에서 “사용자측의 노조운영비 지급은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다”고 판결했다. 노조가 투쟁을 통해 노조간부들의 급여 지급을 얻어낸 것이라면 회사의 급여 지원을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없다는 논지였다.

물증 없는 고문사건이었던 김근태(金槿泰·현 민주당 국회의원) 전 민청련 의장에 대한 사건에서도 그는 법을 폭넓게 해석했다. 김씨를 고문한 혐의로 기소된 전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경찰관 4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그는 “김씨가 고문 경험을 생생하게 밝히고 있어 고문도구 등 물증이 없다 하더라도 충분히 사실로 판단된다”며 이들의 유죄를 인정했다.

▽성 풍속▽

음란성 여부를 둘러싸고 2년 가까이 논란을 빚은 연극 ‘미란다’에 대해 그는 96년 6월 “여주인공이 완전 나체로 변태적인 성행위 장면을 연기한 것은 관람객들의 성욕을 자극하는 행위로 음란성이 인정된다”며 ‘음란물’이라는 최종 판정을 내림으로써 문화계에서 주장한 ‘표현의 자유’에 쐐기를 박았다.

퇴폐영업을 하다 적발돼 영업취소를 당한 이발소 주인이 “단속에 처음 걸렸는데도 곧바로 영업을 취소한 것은 부당하다”며 행정당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그는 “이발소의 윤락행위는 엄하게 단속하는 게 마땅하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적법 절차 증시▽

김 총리서리의 판결은 진보와 보수라는 스펙트럼으로 재단하기 어려운 게 더 많다. 해고 등 징계 사유가 충분하다 하더라도 징계 절차에 잘못이 있는 경우에는 무효라는 ‘친 노동자적 판결’(95년 1월)을 내렸는가 하면 수입쇠고기를 섞어 만든 갈비세트에는 수입 표시가 없어도 된다고 판결(91년 11월)해 시민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의 한 인사는 “김 총리서리는 판결에서만큼은 절차와 기준을 꼼꼼히 따지는 편이었다”며 “분야별로 판결 성향이 달라 보이는 것은 적법 절차를 중시하는 소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석수 국무총리서리 국회 인사청문특위 위원들의 예상질의 사항
소속이름나는 이런 것을 집중적으로 묻겠다
한나라당정의화(간사)타워팰리스 특혜 분양 의혹 및 자금조달 경로
김학송아시아경기의 한반도기 문제 등 대북관 및 국가관
김성조대선 공정관리 및 임기말 국정수행 능력
안영근삼성전자 사외이사 활동 및 법관시절 판결
심규철법조인으로서의 총리서리 위헌 인식 및 장남에 대한 증여 문제
이승철햇볕정책의 공과와 주5일 근무제 등 노동 환경 정책
민주당이협(위원장)
원유철(간사)삼성 사외이사 실권주 배당문제 및 재산증식 경위, 임기말 국정수행 능력
김성순복지 교육 지방자치 분야에 대한 소신과 정책방향
김덕배경남 하동의 10필지 증여세 및 상속세 회피 의혹, 임기말 경제정책기조
문석호변호사 수임료 과다 의혹 등 재산증식 경위, 여성 정책 방향
배기운장남 병역면제 경위, 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입장
자민련송광호변호사 개업 이후 재산증식 과정

=김석수 총리서리 주요 경력=

·법원행정처 차장

(88.7.20∼91.1.22)

·대법원 대법관

(91.1.23∼97.1.22)

·제10대 중앙선관위 위원장

(93.10.6∼97.1.22)

·대법원 공직자윤리위 위원장

(97.8.1∼2001.7.31)

·한국신문윤리위 위원장

(2000.9.29∼2002.9.9)

·정부 공직자윤리위 위원장

(2002.5.13∼2002.9.9)

▼선관위원장 시절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은 김석수 총리서리가 중앙선관위원장을 지낸 93년 10월부터 97년 1월까지를 ‘선관위 중흥기’라고 평가했다. 통합선거법 제정, 선거비용 실사, 선관위에 재정신청권 부여, 노조 교육위 농축협 등의 선거관리 대행, 선관위 신청사 건립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김 총리서리는 선관위원장 취임사에서 “공명선거를 저해하는 어떠한 외부세력과도 단호하게 맞서겠다”고 강조했고 이 같은 내용을 해마다 신년사에서도 되풀이했다. 선관위는 96년 15대 총선 후에는 선거비용 실사를 한 뒤 김 총리서리의 지시에 따라 김윤환(金潤煥) 전 신한국당 대표와 오세응(吳世應) 국회부의장 등 현역의원 20명을 검찰에 고발, 정치권에 파란을 몰고 왔다.

그러나 김 총리서리는 친여 편향 및 공명선거 의지를 둘러싼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96년 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여당의 편의만을 위한 (선거비용) 실사 결과다”고 비난했고 시민단체들도 고발대상 축소 의혹을 제기했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95년 3월말 4대 동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을 돌며 지역공약을 내놓자 선관위는 “선심행정 우려가 있으므로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선관위원장 발언자료’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내용이 보도된 뒤 선관위측은 “위원장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언론사에 정정보도를 요청하는 소동을 벌였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선관위원장이 권력의 압력을 받는 마당에 공명선거는 물 건너갔다”고 반발했다.

김 총리서리는 또 95년 6월 아태재단이사장이던 김 대통령의 지방순회 강연을 위법이라며 제지하고 총선 직전인 96년 3월에도 시국강연회 중지를 요청하면서 실무책임자를 고발, 야당과 수차례 마찰을 빚었다.

그의 업무스타일은 실무간부 중시형이라는 게 선관위 직원들의 평이다. 이종우(李鍾宇·선관위 기획관리관) 당시 비서실장은 “그는 과장들이 튼튼해야 조직이 잘 돌아간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업무보고를 과장이 직접 하게 하고 매월 과장급 이상 20여명과 함께 등산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비용 현실화, 투표 마감시간 1시간 연장, 4대 동시 지방선거의 분리 실시 등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으나 실천하지 못한 채 선관위원장에서 물러났다.

특별취재팀

정치부=윤종구, 부형권기자

경제부=송진흡기자

사회1부=강정훈, 하종대, 이상록기자

▼윤리위원장 등 맡았을땐▼

김 총리서리는 97년 1월 대법관에서 물러난 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 활동해 왔다. 여러 윤리위원장을 맡아 김대중(金大中) 정부와 인연을 유지해온 셈이다.

그는 윤리위 회의 등 공식 석상에서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 데 반해 사석에서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 적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윤리위에서 함께 활동한 인사는 “올해 초 어느 사석에서 그는 정부와 여당을 강하게 비판한 일부 언론에 대해 ‘내 주변 사람들이 그 신문 시원하게 잘 만든다고 하더라’며 우회적으로 정치적 성향을 나타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가 총리서리로 임명됐을 때 주변에서는 “김 대통령이나 현 정부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인데…”라며 의아해 했다는 후문이다.

김 총리서리는 대부분 대한변협의 추천에 따라 윤리위원장을 맡았다. 대한변협의 고위관계자는 “김 총리서리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모르겠지만 평판이 괜찮다는 것은 법조계에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무난한 인물이라는 얘기다.

그는 3개 윤리위원장직을 ‘무난하게’ 수행했다는 게 중평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장 시절 깐깐하게 따지지 않고 원만하게 잘 이끌었다”고 말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재산등록을 잘못한 판사 등에 대한 경고나 시정 조치는 연간 1∼3건으로 다른 위원장 시절의 3∼5건에 비해 다소 적었다.

신문윤리위원장 때는 보수적 성향을 보였다.

그는 지난해 1월 스포츠신문 발행인들에게 “청소년의 탈선적 호기심과 음란을 조장하는 선정성 보도 및 광고 양태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공개 경고 서한을 보냈다. 발행인에 대한 경고 서한은 61년 신문윤리위 발족 이래 처음이었으며 올 1월에도 비슷한 내용의 공개 서한을 다시 보냈다.

여성의 권익 같은 이슈에 대해서도 다소 보수적이었고 선정적 기사에 대한 제재 수준도 심의실의 사전 의견보다 강하게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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