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후보 脫DJ 딜레마 "앞설수도…뒤설수도…"

  • 입력 2002년 6월 28일 18시 50분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가 ‘탈(脫) DJ’문제를 둘러싼 당내 갈등이 증폭되면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처지에 빠졌다.

노 후보는 6·13 지방선거 패배와 자신의 지지도 하락 등으로 겪고 있는 수세 국면을 공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강하게 느껴왔고 그런 맥락에서 획기적인 부패청산 프로그램을 제시함으로써 승부수를 던진다는 복안이었다.

26일 시민단체 간부들과의 간담회에서는 “지도자로서의 결단을 피할 수 없다”는 말로 조만간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김홍일(金弘一) 의원 탈당 문제를 놓고 쇄신파와 동교동계가 정면 충돌 직전까지 가는 등 당내 갈등이 불거지자 노 후보는 28일 월드컵 대회 직후 갖기로 했던 기자회견 계획을 보류하는 등 한발 물러섰다.

노 후보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결단’ 발언에 대해 “아직 결정되거나 결정적으로 검토한 게 없다. 내가 독단적으로 결론을 내려 물건값을 흥정하거나 빚을 받아내는 것처럼 할 수는 없다. 언론이 너무 앞서 갔다”고 해명했다. 또 “감정적 비판이나 공격을 하는 차별화와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일단 선을 그었다.

자신의 부패청산 프로그램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의 차별화로 비치면서 새로운 당내 분란의 불씨로 작용하는 것은 피하겠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당내의 복잡한 상황에 대해 노 후보는 내심 적지않은 불만을 갖고 있는 듯하다.노 후보는 이날 모 의원에게 “지금은 개혁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도덕성이나 가치관에 대한 문제도 거론하면서 공세적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저런 면에서 당과 내가 잘 안 맞는다”고 고충을 토로했다는 후문이다.

자신의 개혁성을 드러낼 수 있는 국면 전환 카드를 통해 노무현-이회창 대립 구도를 만들어내고 싶지만 당의 의사결정 지연으로 발목이 잡히고 있다는 것이다.

노 후보는 또 이날 KBS라디오에 출연, 김 의원의 탈당 문제를 둘러싼 당내 논란에 대해 “하나의 방안일 뿐인 데 그것만 갖고 왈가왈부하고 있어선 안된다. 국민은 관심이 적은데 당내에서만 논란이 커진 것 같다”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향후 계획에 대해선 “단계별로 적절한 정치 행위를 하면서 밟아나가겠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가 당의 의견을 청와대에 공식 전달한 이후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다음 수순을 모색하겠다는 뜻이었다.

다음은 기자간담회 요지.

-정국 수습을 어떻게 해나갈 생각인가.

“국민이 납득할 만큼 사죄하고 어느 정도 용서받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이와 같은 부조리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대안을 마련하겠다. 정치지도자로서 결단과 각오를 담아 국민에게 약속드려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청산프로그램의 내용은 뭔가.

“미리 정해진 것을 갖고 있지 않다. 당과 논의해야 하고 한나라당의 반응이나 언론과 국민의 판단을 포함해서 결론을 내릴 것이다.”

-언제 청산프로그램을 내놓을 예정인가.

“중요한 정치적 결단은 여러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 지금은 모색의 과정으로 봐달라.”

-(DJ와의) 차별화에 대한 생각은….

“기존의 차별화라는 용어가 갖는 이미지는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별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국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