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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6월 1일 22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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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사진) 일본 관방장관의 발언이 한일월드컵 대회로 모처럼 무르익은 양국 우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물론 후쿠다 장관 본인도 “정부 차원에서 비핵(非核) 3원칙을 바꾸겠다는 뜻이 아니다”며 해명하고 나섰으나 야당 측의 반발은 물론 한국 중국 등을 포함한 동북아 정세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일본정부 여당이 일본이 무력공격을 받았을 경우에 대비한 유사관련법제를 강행하고 있는 만큼 일부에서는 고이즈미 정권이 핵무기 사용까지도 염두에 둔 유사법제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야당 측은 “중대하고 위험한 발언”이라고 즉각 반발하며 주초 국회에서 발언 진위와 정부의 방침을 추궁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는 “(핵 보유에 대한) 정부 (공식)해석인지 아닌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들도 이번 발언은 원폭 피해국인 일본의 국민감정을 무시한 것이자 고이즈미 정권의 매파적인 체질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신문은 1일 “핵무기를 갖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겠다는 비핵 3원칙의 국시(國是)를 도외시한 것으로 주변국에 군사대국화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최근 역사교과서나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등을 둘러싸고 고조됐던 양국간 갈등이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간신히 화해 분위기로 돌아선 상황에서 이번 발언이 양국간 마찰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우려했다.
여당 내에서도 후쿠다 장관의 발언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자민당 관계자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며 당혹함을 감추지 못했으며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의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 대표도 “자세한 발언 경위는 모르지만 비핵 3원칙은 바꿔서는 안 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후쿠다 장관의 발언은 얼마 전 야당인 자유당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당수가 일본의 핵무장 문제를 언급해 파문을 일으킨 데 이은 것으로 앞으로도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오자와 당수는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 “지나치면 일본인은 히스테리를 일으킨다”며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수천발의 핵탄두를 보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12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총리가 국회에서 처음으로 ‘비핵 3원칙’을 공식 표명해 71년 중의원에서 준수결의를 채택하면서 국시로 지켜져 왔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소의 핵연료 리사이클 과정에서 상당량의 플루토늄을 확보하는 등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