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규민]´일해´에서 ´아태´까지

  • 입력 2002년 3월 8일 18시 19분


1990년 1월11일 청와대에서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영수회담을 한 뒤 발표된 보도문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정부는 일해재단의 자금을 유익하게 사용하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한다.’

그 후 정부는 일해재단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떼어내는 일련의 작업 끝에 세종연구소라는 민간 공익연구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청와대모임에서 당시 김대중 총재가 일해재단과 관련해 어떤 주장을 했는지는 발표문에 안나와 있지만 그 즈음 일해재단은 ‘5공비리의 상징’이란 이유로 평민당을 포함한 야당으로부터 해체압력을 받고 있었다.

▼뇌물…인사개입…´두얼굴 재단´▼

군사정권시절의 일해재단식 해악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당시 일해재단이 뇌물을 받거나 권력을 전횡하거나 혹은 정부요직 인사에 개입하는 등의 비리를 저질렀다는 기록은 없다. 당시 야당은 그런 비리 때문에보다는 ‘군출신 독재자가 권력을 악용해 재벌 돈을 거둔 것’이 괘씸했고 ‘아방궁 같은 건물을 지어 퇴임 후 이 재단을 통해 수렴청정할 가능성’을 두려워해 해체를 요구했는지 모른다.

여하튼 일해재단을 그렇게 전씨로부터 격리시키는 데 일익을 한 당시 야당의 김대중 총재가 그 후 세운 것이 아태재단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그런 아태재단이 요즘 여론의 도마에 올랐는데 비난받는 강도가 일해재단 때보다 약하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중에 80억원을 들여 1500평짜리 재단건물을 세운 것을 놓고 지금 야당은 그때 평민당이 일해재단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아방궁’이라고 비난한다. 두 재단의 규모를 볼 때 아태재단은 94년부터 2000년까지 모금한 돈이 213억원으로 일해재단이 기탁받았던 575억원에 비해 겉으로는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다. 단지 일해재단의 재산은 5공비리 청문회 등을 통해 완전히 알몸이 드러난 것이고 아태재단의 경우는 재단측이 스스로 외교통상부에 신고한 액수라는 차이가 있다.

아태재단은 그나마 김 대통령이 92년 대선을 앞두고 “장애인재단에 넣겠다”고 약속했던 이희호 여사 소유 땅(서울 영등포 및 경기 화성 소재)을 판 돈까지 집어넣은 것이 그 정도라고 한다. 얘기가 벗어나지만 다른 약속은 다 어기더라도 150만 장애인들을 대상으로는 말을 바꾸지 말았어야 했다.

요즘도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는 장애인들이 ‘우리도 버스를 타고 다닐 권리가 있다’며 장애인 이동권을 절규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의 너무도 당연하고 간절한 요구가 실천되지 못하는 것은 ‘휠체어 버스’를 도입할 만큼 재정이 넉넉지 못하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인데 아마도 영등포땅과 화성땅 판 돈을 여기에 썼다면 지금쯤 웬만큼 해결됐을 문제인지도 모른다.

장애인들을 더욱 분노케 한 것은 거짓이 드러난 이후 ‘법인에 넣기로 한 약속대로 실행했다’고 강변하던 관계자들의 부끄럼 안타는 태도였다. 아태재단이 장애인재단인가. 이사장이 자신의 재단에 재산을 내놓은 것도 헌납이라면 헌납이지만 중요한 것은 헌납대상이 장애인재단인가 아닌가 하는 데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관여했던 일해재단이 국고에 귀속될 만큼 악성조직이었다고 한다면 같은 기준을 김 대통령의 아태재단에 대입할 때 어떤 결론이 나올까. 아태재단측은 강제로 기금을 모아 만든 일해재단과 태생부터 다르다며 그 쪽과는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여론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오히려 아태재단이 더 불리한 이유를 들자면 우선 일해재단은 기업들로부터만 돈을 받았으나 과거 아태재단은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 심지어 지방선거 출마자들로부터도 후원금을 받아 비판을 받았다(주간동아 3월7일자). 일해재단의 경우 어떤 임원들도 은밀하게 돈을 챙긴 사실이 없지만 아태재단의 상임이사는 이용호씨 등으로부터 추악한 뇌물을 받아 옥중에서 차가운 봄을 맞고 있다. 일해재단 구성원들이 정부인사에 개입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지만 아태재단 이사는 군요직에서 문화계에 이르기까지 인사청탁을 받을 만큼 실력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설립자는 왜 해명조차 없나▼

아태재단은 왜 개인이 저지른 일 때문에 재단이 욕먹어야 하느냐고 항변하지만 그가 조직의 대표성을 갖고 있는 임원이라면 그런 말은 설득력이 없다. 대통령의 집사출신으로 아태재단 실세였다는 그 사람이 구속됐는데도 이 재단의 설립자는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해 사과든 해명이든 국민에게 아무런 말이 없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단지 관심있게 미래를 지켜볼 뿐이다. 예상보다 일찍 문제가 터지긴 했지만 아태재단에서 반복되기 시작한 일해재단의 역사가 어떻게 귀결됐는지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규민 논설위원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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