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서글픈 北관광설명회

  • 입력 2002년 2월 28일 18시 44분


지난달 27일 일본 도쿄(東京)에서는 북한의 ‘아리랑 축전’을 선전하는 관광설명회가 열렸다. 북-일관계가 냉각된 시점에, 그것도 북한의 고위 당국자가 직접 일본에 와서 가진 설명회였기에 관심은 컸다. 참석자도 내외신 기자와 여행업자들을 합쳐 100명이 넘었다.

‘아리랑 축전’은 북한이 고 김일성(金日成) 주석 탄생 90주년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4월29일부터 6월29일까지 평양 대동강변 능라도의 노동절 경기장에서 개최하는 대형 매스게임 중심의 축전이다.

조선 국가관광총국 황봉혁(黃鳳赫) 처장은 ‘아리랑’을 설명하다가 “들으면 생각이 날 것”이라며 즉석에서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정선아리랑과 밀양아리랑에 이어 북한체제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칭송하는 ‘강성부흥 아리랑’까지 내리 4곡을 불렀다.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노래는 좋았으나 기자회견에 대한 준비는 전혀 안 돼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은 몇 명으로 예상하나’ ‘한국계 재일동포도 갈 수 있나’ ‘2박3일에 얼마나 드나’ 등 쏟아지는 질문에 황 처장은 “알 수 없다”거나 “논의 중”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선에 와서 매스게임을 보지 않으면 조선을 보지 않은 것과 같다. 어린이들이 여러분을 맞이하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는 말은 빼놓지 않았다. 2000년 10월 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식 때의 매스게임을 담은 비디오도 보여줬다. 주로 어린이들이 펼쳐 보이는 매스게임이었다.

한마디로 씁쓸했다. 저 아이들은 요즘 북한이 처한 현실을 알기나 할까.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북한에 겨눠진 ‘적의(敵意)의 칼날’에 대해 얘기라도 들어보았을까.

대북 강경론자는 아니지만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는데 북한은 아직도 저 수준인가. 매스게임으로, 그것도 아이들을 동원한 매스게임으로 외화벌이에 나선 북한의 시계는 지금 몇 시인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규선 도쿄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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