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집권당 對美 인식 이래서야

  • 입력 2002년 2월 19일 18시 32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악의 화신’으로 지칭한 민주당 송석찬(宋錫贊) 의원의 국회 발언은 발언 당사자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하고 우려하는 것은 그가 소속된 집권당이 과연 오늘의 남북 문제와 한미 관계 등 한반도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올바로 인식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송 의원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부시 대통령의 연설을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이며 한반도를 영구 분단시키려는 미국의 계획적인 책략”이라고 비난했다. 한마디로 남북, 한미, 북-미관계에 대한 성찰은커녕 기본적 현실 인식조차 결여된 발언이다. 북의 대량살상무기(WMD)와 재래식무기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내기 위한 미국의 전략전술이 잘못됐다는 비판은 가능하다. 문제는 그런 본질적인 비판보다 ‘악의 축’이란 말 자체에 집권당이 지나치게 흥분해 의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송 의원의 발언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를 가리는 일은 중요하다. 송 의원의 문제 발언에 대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야 민주당은 “악의 화신 발언은 대단히 부적절하며 당과는 무관하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송 의원은 사전에 당내에서 자신의 대정부 질문 내용과 발언 수위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가 있었다고 시인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송 의원의 발언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제지하지 않았다면 이는 실로 국기(國基)를 흔드는 중대사다. 민주당 측 주장대로 송 의원의 원고를 사전에 검토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민주당 지도부가 송 의원의 발언이 있고 청와대의 질책이 있기까지 몇 시간이 지나도록 문제의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한심한 일이다. 우리가 집권당인 민주당의 좁은 시각과 ‘이성적이지 못한’ 대미(對美) 인식을 우려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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