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南갈등 격화…'방북단 이념논쟁' 인터넷 속으로

  • 입력 2001년 8월 22일 18시 46분


평양 ‘8·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했던 인사들 가운데 21일 16명이 공안당국에 긴급체포돼 이적성 여부에 대해 조사받는 것을 계기로 사이버상에서도 남남 이념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22일 청와대 등 정부기관과 동아일보사를 비롯한 언론사 홈페이지, 통일연대 등 재야단체 자유게시판 등에는 일부 방북인사들의 행적을 둘러싼 찬반논쟁이 치열했다.

방북단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며 ‘북으로 보내야 한다’는 원색적 비난에서 ‘이번 기회에 국가보안법을 철폐해 통일을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격렬한 목소리들이 주류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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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오른 사이버공간〓‘반통일’이라는 ID로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네티즌은 “남북통일 안해도 좋으니 남남 일치나 먼저하자. 김일성 찬양하는 사람 북으로 가고, 반공을 국시로 하는 사람 남쪽에 있자”고 적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만경대 정신’이라는 북한 고유의 용어를 쓸 정도면 남한 땅에 살 자격이 없는 불순한 자”라고 공박했다. “이참에 빨갱이 고정간첩이 누군지 다 밝혀졌으니 이×들을 아주 이북땅으로 보내버리자”는 의견도 있었다.


통일연대 홈페이지에서 한 네티즌은 “나도 대학생 때 학생회 간부를 했지만 이번 방북단의 행태는 씁쓸하기 그지없다”며 “‘통일’은 일부 시민단체의 소유물이 아니며 자기들끼리만 통일을 갈망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성토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정부가 친북 좌익세력에게 통일에 대한 모든 것을 맡기면 국가와 민족의 앞날이 없다. 한줌도 안되는 철부지들의 장난을 더 이상 좌시하지 말고 동질성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북한의 놀라운 지능 플레이에 남한의 국민이 반반씩 찢어서 대립을 하며 또 하나의 삼팔선이 생겨나고 있다”고 개탄했다.

반면 일부 방북인사들의 행적을 지지하는 의견도 있었다. 모 언론사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만경대 운운한다고 조선노동당의 앞잡이가 되는가? 김정일도 자본주의를 배우겠다고 했는데 그럼 김정일은 남한의 빨갱이인가?”라고 물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만경대 방명록에 적은 말 한마디에 무슨 큰 일이 난 것인 양 왜 호들갑을 떠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사상의 자유가 반공보다 우선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네티즌은 “50여년 만에 처음 있었던 민간인들의 만남이었던 만큼 시행착오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각종 모임에서도 이념논쟁〓이모씨(35·회사원)는 방북단이 귀환한 21일밤 고교동창회에 참석했다가 때아닌 이념논쟁에 휘말려 즐거워야 할 모임을 망치고 말았다.

일부 인사의 긴급체포 사실을 알리는 저녁뉴스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이 문제가 화제로 떠올랐고 저마다 “잘했다” “잘못했다”는 의견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

이씨는 “급기야 통일을 해야하네, 말아야 하네로 의견이 엇갈리면서 빨갱이냐 친일파냐는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나왔다”면서 “서로의 생각 차이가 너무 커서 귀갓길 기분이 아주 씁쓸했다”고 전했다.

▽전문가 의견〓서강대 사회학과 김영수(金英秀) 교수는 “현재 진보-보수 대립은 군사독재와 불평등한 경제발전에 대한 반대라는 확실한 준거가 있었던 과거와 달리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테러만 없을 뿐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진보-보수를 가르는 유일한 기준은 통일문제뿐인데 내부 의견 통일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된 햇볕정책이 진보-보수 갈등의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허문명·최호원·현기득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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