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장거리 미사일 포기 제안"…NYT기사 주요내용

  • 입력 2001년 3월 6일 23시 14분


지난해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이 위성발사를 대신해주면 사거리 300마일이 넘는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겠다고 제안했다. 또 미사일 부품과 기술은 물론 미사일의 수출도 중단하겠다고 했다.

김위원장은 그 대가로 당초 (최소 3년간) 매년 10억달러를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했으나 이를 철회하고 대신 10억달러에 상당하는 식량과 석탄, 생활필수품 등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미국과 북한은 협상의 최종 장애물을 제거하고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11월 초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전문가 회담을 열었다. 그렇지만 북한 대표들은 권한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 대표단은 북한측에 양국 정상회담에서 서명하고 공개할 미사일기본협정문 초안 1부와 함께 양측의 준수사항을 요약한 (공개되지 않을) 비밀 서한을 전달했다.

협정의 초안 내용은 김위원장의 제안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미국은 북한이 사거리 180마일(300㎞)이 넘는 모든 미사일의 생산 실험 배치를 금지하길 원했다. 미국은 또 북한이 이미 생산 보유한 미사일의 폐기도 요청했다.

그러나 양측은 북한이 이미 생산한 미사일을 폐기할 것인지와 현금 대신 어떤 형태의 지원을 북한에 제공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막판까지 타협을 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협상을 위해 웬디 셔먼 대북정책조정관과 국무부 국방부 국가안보회의 관리들로 구성된 방북팀이 만들어졌다. 당시 셔먼조정관은 김위원장이 미국의 제의에 응할 경우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날짜를 결정할 권한까지 갖고 있었다.

셔먼 조정관은 미사일협상의 마지막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언제라도 북한을 방문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11월 중 평양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행을 결정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그는 12월 중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아프리카 순방을 수행할 때도 갑자기 평양방문이 결정될 것에 대비해 겨울옷 가방을 따로 준비했다.

그러나 미 대선의 재검표 혼란이 길어지면서 샌디 버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에 반대했다. 잠재적인 ‘헌정 위기’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시기에 대통령이 국가를 떠나선 안된다는 이유였다. 결국 셔먼조정관의 방북은 무산됐고 이에 따라 북―미 정상회담도 이뤄지지 못했다.

12월 중순 대선 혼란이 마무리된 뒤 셔먼조정관은 콜린 파월 차기 국무장관 지명자와 콘돌리자 라이스 차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협상의 모든 진행상황을 설명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팀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노력은 인정했으나 미사일 협상은 지지하지 않았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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