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형제 '눈물의 筆談-手話'…기만씨와 병실 상봉

  • 입력 2000년 12월 1일 19시 51분


병든 두 노인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김기만씨(71·평양미술대학교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누운 채 꼼짝 못하던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88)화백은 입가를 움찔거리며 손가락을 쳐들어 50년만에 본 막내동생을 가리켰다.

▼사흘전부터 병세 좋아져▼

한동안 정적이 흐른 뒤 기만씨가 수첩을 꺼내 ‘개선장군이 되어 왔습니다’라고 써서 보이자 운보는 눈물을 흘리며 동생의 손을 어루만졌다. 남한의 ‘국보급 동양화가’와 북한 ‘공훈예술인’ 형제의 만남은 고요했기에 더욱 애절했다.

당초 성사가 불투명했던 형제의 병상상봉은 운보와 기만씨의 강력한 희망과 남북한 당국의 협조로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병실에서 약 20분간 이루어졌다.

운보는 7년 전부터 패혈증과 고혈압으로 수없이 사경을 헤매 병원측이 “상봉 때까지 기필코 살리겠다”고 할 정도로 위독했다.

하지만 상봉 사흘 전부터 거짓말같이 병세가 호전돼 1일에는 산소호흡기를 뗀 채 상봉에 임할 수 있었다.

이날 상봉은 운보가 선천적인 청각장애인인 데다 목에 음식물 주입관을 끼워 의사소통이 힘들고 기만씨도 석달 전 찾아든 중풍으로 언어장애가 있어 주로 필담과 수화로 이뤄졌다.

▼"형님과 전시회 열려했는데…"▼

지난달 30일 상봉장에서도 조카와 사촌에게 “형님이 우리를 다 키웠다. 반드시 만날 것”이라고 말했던 기만씨는 이날 “형님과 함께 전시회를 열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신 줄은 서울에 와서야 알았다”며 울먹였다.

이날 만남에서 운보는 자신이 아끼던 소품 ‘승무(僧舞·71년작)’를, 기만씨는 창공을 비상하는 새를 그린 수묵화 ‘태양을 따르는 한마음’ 등 4점을 선물로 건네며 서로의 예술혼을 확인했다.

그러나 기만씨는 작품설명을 하며 “장군님을 찬양하는 그림”이라고 말해 한때 어색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운보의 아들 완(完·51)씨는 “부친께서 평소 병환으로 표정이 굳어 있었는데 상봉 때 유난히 밝은 표정을 유지했다”며 “병세가 염려된 것은 사실이지만 동생의 방문을 이야기할 때마다 놀라며 기대감을 표하시기에 반드시 만나게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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