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일부 자성론…"차라리 탄핵안 가결되는게…"

  • 입력 2000년 11월 19일 23시 31분


민주당이 검찰수뇌부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막기 위해 국회의장실과 의장공관을 점거하는 집권여당으로선 초유의 국회의장 사회권 봉쇄 사건에 대해 각계에서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여권 내부에서도 “소수여당으로서 한계가 있다지만 집권당이 그런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자성론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집권 여당이 의안상정을 실력저지한 것은 “의회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며 강력 비난하고 나섰다.

이석연(李石淵)경실련사무총장은 “적법절차에 의한 의안처리를 막는 것은 날치기보다 더 나쁜,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민주당은 탄핵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판단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대표들은 18일 오후 이에 대한 항의로 국회의장 공관을 방문한 데 이어 조만간 대책모임을 갖고 향후 국회 앞에서 대여(對與) 항의시위를 갖는 등 여론조성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의장공관에서 민주당 돌격대로 나선 386의원 등이 우리를 보고 고개를 감추는 모습을 보고 비애를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당초 탄핵안 표결 때 중도퇴장이라는 전략을 세웠다가 표결결과를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국회의장실을 점거하고 탄핵안 상정 실력저지로 급선회한 것에 대해 “정정당당하지 못하고 옹졸했다”는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민주당의 대다수 의원들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일부 초재선 의원들은 익명을 전제로 지도부의 원내전략 부재와 무리한 정국대응을 비판했다. 당 지도부의 임기응변식의 무리한 대처가 향후 수습하기 어려운 정국파행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한 초선의원은 “야당과 탄핵안 본회의 보고에 합의한 것은 사실상 표결처리에 합의해 준 것인데도 뒤늦게 왜 도둑질하듯 대응했는지 모르겠다”며 “이런 모습은 ‘법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뜻과도 맞지 않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지역구 등의 비난여론 때문에 창피해서 고개를 못들고 다니겠다”면서 “검찰총장이 탄핵소추된다고 해서 나라가 흔들리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당당하게 표결에 임해 탄핵이 가결됐어도 이보다 낫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민주당의 탄핵안 상정 실력저지가 안팎의 거센 비난여론에 부닥침에 따라 여권의 향후 정국대응 방식에 대한 재검토 요구는 물론 당 지도부에 대한 인책론도 대두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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