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한국국적 재일교포 박창헌씨 北누나와 상봉

  • 입력 2000년 9월 4일 18시 55분


한국 국적의 재일동포가 최근 북한의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에 들어가 55년만에 누나를 만났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측 태도가 유연해졌음을 보여준다.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하마(橫濱)시에 사는 박창헌(朴昌憲·74)씨는 지난달 22일부터 29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다. 도쿄(東京)의 민간단체인 ‘피스 보트’가 일본인을 상대로 모집한 북한방문단 201명과 함께였다.

박씨는 방문신청을 하면서도 ‘과연 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며칠 후 조총련에서 방문자로 확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 조총련 관계자는 중국에서 헤어진 박씨의 누나(83)가 개성에 살고 있다는 소식도 알려줬다. ‘피스 보트’의 북한방문은 91, 96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였지만 한국국적의 재일동포와 취재진의 동행을 허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박씨가 북한 방문을 희망한 것은 누나를 만나보고, 북한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북한에 들어간 지 사흘만인 지난달 25일의 일정은 판문점 견학 후 개성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가 간절히 바라던 누나와의 상봉은 이날 마침내 이뤄졌다. 그는 북한측의 인도적인 배려로 일행과 떨어져 개성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누나와 55년만의 감격적인 재회를 했다.

박씨 남매는 중국 북간도 룽징(龍井)에서 경남 밀양출신 아버지와 함북 경성군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박씨는 길림고등사범학교 재학중 일본군에 학도병으로 끌려나가 중소국경에서 복무하던 중 45년 6월 일본으로 철수했다가 전쟁이 끝나면서 일본에 눌러 앉게 됐다. 교사였던 누나는 중국의 정정이 불안해지자 남편과 함께 북한으로 이사를 하면서 동생과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남매의 상봉시간은 45분이었다. 누나는 “이제 눈을 감고 죽을 수 있겠구나”하며 동생의 손을 놓지 않았다. 동생은 “누님, 또 찾아올 테니 오래 사세요”하며 금세 찾아온 이별을 아쉬워했다.

일본에 돌아온 박씨는 “누님이 북한에서 교육자로 대접을 받으며 지낸 것 같아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해운사업 등으로 한때 큰 돈을 벌기도 했다. 외국어학원과 잡지사를 경영하고 있으며 시사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북한을 비판하는 글을 쓴 적도 있다. 83년 이후 전쟁통에 중국에 버려졌다가 귀국하는 일본인을 돕고 있다.

박씨는 “북한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표정이 밝은 것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또 “북한을 찬양하지는 않겠지만 근거없이 비판하지도 않겠다”는 말로 북한방문 후의 심정변화를 설명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