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전처, '월남한 남편' 혼인무효소송 추진

  • 입력 2000년 7월 30일 19시 03분


북한에 살고 있는 전처가 6·25전쟁 당시 월남한 남편의 후처를 상대로 ‘혼인무효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남북 거주자간 최초의 소송인데다 수십억원의 남편재산 상속문제까지 얽혀 주목된다.

배금자(裵今子)변호사는 30일 “이달 초 사망한 실향민 S씨와 전처 J씨 소생 아들 2명(S씨와 함께 월남)이 ‘북한에 살고 있는 어머니를 원고로 하고 남한 거주 후처 Y씨를 피고로 한 소송을 제기해 원래의 혼인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의뢰해 왔다”고 밝혔다.

배변호사는 “전처 소생 아들들이 지난해 통일부의 허가를 얻어 북한을 방문, 어머니가 재혼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현재 독일의 한 교포를 통해 북한당국이 공증한 전처의 소송위임장을 받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S씨가 남긴 재산의 상속 문제가 걸린 이번 소송이 실현될 경우 △북한주민의 소송 위임장이 남한에서도 유효한지 △전혼(前婚)의 효력이 과연 인정될지 △북한 주민에게도 상속권이 인정될지 등을 둘러싸고 법적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배변호사는 “헌법상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J씨가 소송을 제기하는 데에는 현행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일제 때 만들어진 S씨의 원래 호적에는 J씨가 배우자로 입적돼 있어 Y씨와의 결혼은 중혼(重婚)에 해당하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남북분단 상황에서 재혼으로 인한 새 가족관계가 50년 이상 지속된 만큼 새 배우자의 의사에 반해 전혼의 효력을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많아 소송 결과는 미지수.

대법원이 98년 발간한 ‘북한의 가족법’연구는 “전혼을 인정하지 않거나 세 당사자가 모두 희망하는 경우 상속이나 부양청구를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전혼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정책적 판단에 따른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S씨는 북한에서 J씨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둔 뒤 6·25때 두 아들만 데리고 월남해 56년 Y씨와 재혼해 다시 아들 둘을 얻었다. S씨는 월남 후 새 호적을 만들면서 연좌제에 걸릴 것을 우려해 북에 남겨진 처와 자녀들은 입적하지 않았다.

남한에서 100억원대의 재산을 모은 S씨는 사망 직전인 5월 “통일이 되면 북한의 처자식에게 주려고 했던 재산을 후처 소생 아들들이 명의이전했다”며 두 아들을 상대로 건물 등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청구소송을 제기했다.

S씨가 사망한 후 소송은 함께 월남한 동생 S씨가 특별대리인이 돼 진행중이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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