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의 새章]北 "하고싶은 얘기 다 해달라"…경협확대 논의

  • 입력 2000년 6월 16일 01시 10분


14일 오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선 남북한 경제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기회가 마련됐다. 남측에선 방북 기업인 전원이, 북측에선 정운업 민족경제연합 총회장을 비롯한 10명의 경제인이 참석했다.

정운업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통일이 안돼 기업인들끼리 개별적으로 접촉하느라 체력을 낭비했다”면서 “92년 남북 기본합의사항도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을 꺼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남측 기업인들은 정회장의 말을 들으며 “아, 정말 뭔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김재철(金在哲)무역협회장이 즉석에서 “분단과 대결을 끝내야 한다는 마음 간절하다”면서 “체제가 달라 경제 분야의 협력도 어려웠지만 앞으로는 잘 협조해야 한다”고 답사를 했다. 김회장은 “투자보장협정, 이중과세 문제 해결, 신분 보장 등 제도적 장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이어서 북측 정회장이 남측 기업인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원호(李源浩)중소기협중앙회 부회장은 “북측 민경련만 동의한다면 정기적으로 만나 민간 부문의 문제점을 점검하는 창구를 마련하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의했다.

손병두(孫炳斗)전경련 부회장은 “92년 합의한 남북경제공동위원회를 하루빨리 설치해 산적한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면서 “중국이 대만에 했던 것처럼 남한 기업에 대한 우대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향민’인 장치혁(張致赫)고합 회장은 “남측 몇몇 인사가 운영중인 고향투자협의회 활동이 정상회담 이후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소개했고 강성모(姜聖模)린나이코리아회장은 “고향에 보일러를 공급하고 싶다”고 말해 좌중을 숙연케 했다.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이사는 “1년6개월간 금강산 개발을 해왔지만 투자보장 문제가 선결되지 않아 추진하지 못한 프로젝트가 많다”면서 “남북한 경협에서도 국제적인 룰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종룡(尹鍾龍)삼성전자 부회장은 “제도적인 문제가 갖춰지지 않으면 단순 임가공 형태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강조했고 구본무(具本茂)LG회장은 “89년부터 99년까지 3억3900만달러 규모의 교역을 해왔으나 투자협정이 없어 교역량을 더 늘리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북측 정회장은 “남과 북의 교류 협력이 정말 잘됐으면 하고 기대한다”면서 “민족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말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원칙에 따라 기회를 확대하기를 희망한다”고 모임을 접었다.

15일 백화원영빈관에서의 ‘마지막 오찬’은 남측 기업인들에겐 더욱 드라마틱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측 기업인들의 잔을 일일이 채워주며 건배를 제의한 것. 김위원장은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이사에게 “아버님의 건강은 어떠시냐”고 묻고 “다음에는 꼭 모시고 오라”고 관심을 보였다. 손길승(孫吉丞)SK회장은 이 자리에서 김위원장에게 “경제공동위원회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재차 건의하기도 했다. 남측의 기업인들은 화장품이나 시계 등 안내원들에게 줄 선물을 미리 준비했다. 하지만 북측 관계자들이 “집체적으로(한꺼번에) 공개된 자리에서 주면 감사히 받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는 바람에 개별적으로 전해주는 데는 실패했다.

<박래정·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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