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造語변천사]'자의반타의반'의 유신본당

  • 입력 2000년 5월 26일 19시 33분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는 어려운 처지에 놓일 때마다 고사성어를 통해 우회적으로 자신의 심경을 밝혀온 ‘수사(修辭)의 달인’이다. 변화무쌍한 ‘수사’는 그의 의중을 읽어내는 ‘키워드’이자 질긴 정치적 생명력의 비결이기도 하다.

25일 민주당과의 공조복원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내놓은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화두 역시 JP가 고심 끝에 찾아낸 고사성어. 다만 이번 화두는 과거 JP가 즐겨 써온 절묘한 고사성어나 인용구에 비해 맛과 함의(含意)가 다소 떨어진다는 평이다.

JP의 탁월한 조어력(造語力)은 63년 쫓겨나다시피 외유를 떠나며 남긴 ‘자의반타의반(自意半他意半)’, 80년 ‘서울의 봄’ 정국을 비유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등으로 이미 정평이 나있다. 87년에는 “‘유신잔당’이 아닌 ‘본당’”이라며 정계에 복귀하기도 했다. 또 민자당대표 시절에는 자신을 ‘연작(燕雀·제비나 참새)’에, YS를 ‘홍곡(鴻鵠·큰 기러기나 백조)’에 비유하며 몸을 낮췄다. ‘군자표변(君子豹變)’도 JP가 즐겨 쓰는 4자성어. 변해야 할 때는 변해야지 얼굴 표정만 바꿔서는 안된다는 것.

최근 몇 년 사이에도 JP는 ‘줄탁동기(u啄同機·모든 일에 때가 있다)’ ‘사유무애(思惟無涯·생각함에 막힘이 없다)’ ‘일상사무사(日常思無邪·항상 나쁜 생각을 갖지 말자)’ 등 신년휘호로 자신의 심중을 표현해 왔다.

그의 충청도 사투리도 수사에 기여하는 재료. 91년 YS가 내각제 각서파동으로 당무를 거부하자 사용했던 ‘틀물레짓’, 98년 내각제 개헌문제로 DJ와 사이가 벌어졌을 때 썼던 ‘몽니’라는 표현 등은 유행어가 됐었다.

<이철희기자>klimt@donga.com

▼JP가 사용한 주요 한자성어▼

▽자의반타의반(自意半他意半)〓63년 공화당 사전조직 사건으로 국가재건최고회의 반(反)JP파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은 뒤 김포공항에서 외유를 떠나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80년 ‘서울의 봄’ 당시 하수상한 정국을 두고 아직 ‘엄동(嚴冬)’이라며.

▽유신본당(維新本黨)〓87년 정계복귀 후 대통령선거에서 ‘유신잔당’이라는 비판에 대해.

▽소이부답(笑而不答)〓93년 ‘5·16’과 관련, 역사의 기승전결론(起承轉結論)을 제기한 뒤 물의를 빚자.

▽연작안지홍곡지지재(燕雀安知鴻鵠之志哉)〓93년 개혁과 사정 한파가 몰아치자 “신한국을 창조하시려는 홍곡의 큰 뜻을 비록 연작이지만 어찌 촌탁하지 못하겠습니까”라며.

▽줄탁동기(u啄同機)〓97년 대선정국을 앞두고 ‘모든 일은 때가 있다’는 의미의 신년휘호.

▽이심전신(以心傳神)〓98년 DJ와의 관계에 대해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차원을 뛰어넘어 신통한 경지에 다다라야 한다”며.

<이철희기자>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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