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총선] 喪主…국군포로…냉엄한 '한 표 심판' 줄이어

  • 입력 2000년 4월 14일 00시 07분


16대 총선 투표일인 13일 전국의 투표소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유권자들의 주권행사 행렬이 이어졌다. 총선전이 시작된 이래 여론조사 오차범위 내에서 박빙의 시소게임을 전개해온 전국 각지의 경합선거구에서는 투표일인 13일 새벽까지 각당 후보들이 상대후보의 불법선거운동을 감시하느라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일부 후보들은 투표소를 돌며 마지막 순간까지 유권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려다 선관위의 제지를 받는 등 신경전이 계속됐다.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 등 검찰수뇌부와 공안팀들은 13일 전원 출근해 일선 지검 지청으로부터 전국의 투표 상황을 보고받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

박총장은 “선거사범 숫자가 크게 늘었지만 여야(與野) 가리지 않고 형평에 어긋나지 않게 원칙에 따라 처리한다는 게 검찰의 기본방침”이라며 “엄정한 잣대를 적용해 향후 선거사범 처리를 둘러싸고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공안팀에 지시.

▼서울▼

○…선거인명부에 등재된 유권자 총 1943명중 30% 가량인 570여명이 수녀인 서울 중구 명동 제1투표소에는 오전부터 명동성당과 수녀원에 있는 수녀들의 발걸음이 줄을 이으면서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투표율을 기록.

지방에서 사목 활동 중인 수녀들까지 전날 밤 대부분 상경했으며 김수환(金壽煥)추기경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鄭鎭奭)대주교도 이날 오전 9시50분경 투표소를 찾아 수녀들과 함께 투표.

○…서울 동대문을 지역구에 출마한 민주당 허인회(許仁會) 후보측 선거사무실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김영구(金榮龜)후보를 앞지르고 있다며 개표에 들어가기 전부터 들뜬 분위기.

허후보측은 “비공식적으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김후보를 근소한 차로 이기고 있다”며 “뚜껑은 열어봐야겠지만 일단 승리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논평.

반면 김후보측은 이날 오후 비슷한 정보를 입수했는지 “낙승을 예상했는데 의외”라며 “현재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상태로 보고 있다”고 언급. 김후보측은 “뚜껑을 열어봐야겠지만 그래도 승리할 것으로 믿는다”고 첨언.

▼경기 인천▼

○…경기 광주군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 8명도 투표에 참여. 특히 지난해 5월 중국에서 살다가 64년만에 고국에 돌아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문명근할머니(84)는 “나도 이제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겨 무척 기쁘다”며 고국에서의 첫 주권 행사에 만족.

○…인천 남구 용현5동 용현중학교에 마련된 제5투표구에서는 이날 오전 10시 장애인 박형배씨(81)가 선거인 명부에 도장으로 날인하겠다고 주장하며 서명을 요구하는 선관위 직원과 30여분간 실랑이를 벌이다 투표를 포기.

박씨는 “1947년 피란을 내려온 뒤 선거 때마다 도장을 사용했는데 갑자기 도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선관위 직원이 도장 날인을 계속 거부해 화가 치밀어 투표를 포기했다”고 설명.

○…경기 성남 분당갑에 출마한 한나라당 고흥길(高興吉)후보와 민주당 강봉균(康奉均)후보는 아침 일찍 자택 근처에 있는 선거구에서 투표를 마친 뒤 지구당사에 나와 그동안 고생했던 운동원들을 격려.

고후보는 사무실에서 “담담한 마음”이라고 소회를 밝히면서도 “투표 직전 단순 지지도에서는 민주당 강후보가 약간 앞섰으나 판별분석에서는 내가 앞선 것으로 나왔다”며 “결과는 투표함을 열어봐야 알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등 신중한 모습.

투표를 마친 뒤 운동원들과 해장국으로 아침을 대신한 민주당 강후보는 오히려 취재기자에게 “선거 결과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은 뒤 “여론조사 지지율에서는 다소 앞선 것으로 나왔는데…”라며 고후보와 비슷한 반응.

▼대전 충청▼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인 충북 청주 맹학교 학생 10여명은 청주시 일신여고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했는데 이들은 이날 오전 9시경 맹학교 교사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서 200m가량 떨어진 투표소로 걸어가 투표.

학교측은 학생들의 실수를 막기 위해 투표 전에 2차례에 걸쳐 기표연습을 하도록 했으며 후보자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후보자 약력과 공약 등을 학생들에게 읽어 주기도.

○…충남 서산-태안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박빙의 승부를 펼친 자민련 한영수(韓英洙)후보와 민주당 문석호(文錫鎬)후보는 아침 일찍 부인과 투표를 마친 뒤 긴장된 표정으로 지구당 사무실에서 운동원들을 격려.

6선 고지를 노리는 한후보는 지구당사 부근에서 운동원 20여명과 점심을 먹으면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심경이라며 찾아오는 손님을 맞는 등 담담한 표정. 두 번 낙선한 뒤 재기를 노려온 문후보는 자체 조사결과 한후보를 근소한 차로 앞서고 있다고 판단했지만 선거 당일 자민련 지역바람이 부는 것을 경계하면서 20∼30대 유권자의 투표율에 촉각을 세우기도.

▼대구 경북▼

○…대구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 석준기씨(58)는 모친상 중인데도 일가족 6명과 함께 오전 7시 20분경 반송초등학교 제 2투표소에서 상복을 입은 채로 귀중한 ‘한표’를 행사한 뒤 곧바로 장지로 출발.

○…13일 오전 8시반경 경북 칠곡군 북삼면 송산초등학교에 마련된 제1투표소에 손자 2명의 부축을 받으며 투표하러 간 김향이할머니(86)가 투표소 내 참관인용 의자에 앉아 쉬던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한나라당 김광원(金光元)후보와 민주당 김중권(金重權)후보가 박빙의 접전을 벌인 경북 봉화-울진의 경우 산불 진화에 1만여명의 공무원과 주민이 동원돼 투표율이 감소할 것으로 우려됐으나 오후 들어 투표율이 급상승하자 선관위 관계자들은 안도하는 분위기.

경북 울진선관위 관계자는 “양 후보의 접전지역이어서 산불 진화에 동원된 주민들이 오후에 속속 돌아와 투표에 참여한 것 같다”고 분석.

▼부산 경남▼

○…부산 수영의 민국당 신종관(辛宗官)후보는 선거하는 해와 같은 띠인 용띠 아가씨가 첫 투표를 하면 자신이 당선된다면서 운동원 자녀 중 25세 미혼여성 3명을 뽑아 각기 다른 투표소에서 투표하도록 조치. 신후보측은 또 5세 남자 어린이를 어머니가 업고 투표하도록 하면 당선된다는 또 다른 속설에 따라 당원들을 수소문해 모두 40여명의 해당자에게 투표를 부탁.

○…부산 최대의 경합지역으로 손꼽혀온 북-강서을의 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측은 13일 오후 4시반경 투표율이 50%를 넘어서면서 언론사의 출구조사 결과 3% 앞서 나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환호하면서도 긴장을 풀지 못하는 분위기.

선거운동 초기에 노후보가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결과가 나왔지만 그동안 부산지역에 한나라당 바람이 불면서 한나라당 허태열(許泰烈)후보가 추격전을 전개, 역전시켰다는 투표전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기 때문.

노후보측은 오전 내내 득표율이 엎치락뒤치락하는 혼전 양상을 보였지만 오후 들어 노후보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며 승리를 자신. 그러나 허후보측은 투표 종료 직전까지도 “우리가 앞서고 있다. 11일 조사결과 우리가 7%나 앞서가고 있었다”고 주장.

▼광주 전남북▼

○…광주 북구 두암2동 ‘통일의 집’에 살고 있는 미전향 장기수 4명 가운데 이공순씨(56)와 이재용씨(55)가 이날 오전 인근 청운어린이집에 마련된 제2투표소에서 출소 후 첫 투표권을 행사.

지난해 대통령 특사로 풀려난 이공순씨는 “남북한이 6월에 정상회담을 열기로 해 이번 선거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 같다”며 “죽기 전에 통일된 조국에서 주민의 대표를 뽑는 진정한 선거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한마디. 함께 통일의 집에 거주하는 이경찬씨(65) 등 2명은 본인이 주민등록증 갖기를 거부해 현재 투표권이 없는 상태.

○…전남지역에서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에 참가한 유권자들에게 음식값을 할인해주는 등 각종 행사가 마련됐는데 목포시 하당동 원조이동갈비집 주인 김석지씨(46)는 13일 “투표하고 오는 손님에게 냉면값의 40%를 할인해주겠다”고 이색광고.

○…민주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호남지역 격전지들은 오전부터 전국 평균보다 높은 투표율을 보여 이번 투표에 쏠린 관심을 확인.

민주당 한영애(韓英愛)후보와 무소속 박주선(朴柱宣)후보가 경합을 벌였던 화순-보성지역과 민주당 김봉호(金琫鎬)후보와 무소속 이정일(李正一)후보가 맞붙었던 해남-진도는 다른 지역보다 높은 투표율을 기록.

보성-화순지역에 출마한 민주당 한후보와 무소속 박후보는 시시각각 들어오는 투표율과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받으며 마지막까지 긴장. 화순읍 선거사무소를 지켰던 박후보는 오전까지 보성 지역 출구조사 결과 한후보를 8% 정도 앞선 것으로 파악돼 여유 있는 표정을 짓다 오후 들어 한후보의 출신지인 화순지역 투표율이 상승하면서 상대후보와의 격차가 줄어들자 참모들과 대책회의를 갖는 등 바짝 긴장.

반대로 한후보측은 “화순지역 투표율이 보성보다는 낮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화순지역 유권자가 보성보다 1만여명 정도 많기 때문에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시시각각 변하는 투표율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

▼강원▼

○…강원 춘천시 소양동 투표소 입구에는 한국자유총연맹이 내건 ‘남북정상회담 개최 환영’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민국당측이 “투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선관위에 철거를 요청. 선관위 관계자들은 한국자유총연맹이 투표소가 있는 건물에 입주해 현수막이 걸렸고 현수막 위치도 입구보다는 출구 쪽이라며 난색을 표시.

민국당측은 “선거운동기간에 잠잠하던 관변단체가 투표 당일 이같은 현수막을 내걸 줄 미처 몰랐다”며 “마지막 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며 거세게 항의.

○…9일 조부상을 당한 장준혁씨(24) 등 일가족 15명은 13일 오전 6시반경 장지로 출발하기에 앞서 제주 북제주군 애월읍 곽금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상복을 입은 채 귀중한 주권을 행사. 장씨 조부인 장동숙씨(91)는 노환으로 숨지기 하루 전인 8일 부재자 투표로 생애 마지막 한표를 우편으로 보내 주위를 숙연케 했다는 것.

<총선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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