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박재규-박지원장관 일문일답

  • 입력 2000년 4월 10일 19시 44분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과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은 10일 통일부 회의실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남북 정상회담 합의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송호경 아태부위원장과는 몇 차례나 만났으며 언제 합의를 확신했나.

▽박문화〓“3월17일 중국 상하이에서 처음 만났고 이후 베이징에서 만났다. 지난 7일 북측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8일 베이징에서 4시부터 회담을 했으며 이 자리에서 송부위원장과 최종 합의문을 만들고 7시25분 서명했다.”

―정상회담 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가나.

▽박문화〓“구체적인 합의는 이달에 열리는 양측 실무자 회담에서 결정된다. 의제 절차 등 구체적인 문제도 여기서 논의한다. 예비접촉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논의하지 않았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 문제도 논의됐나.

▽박문화〓“다음 정상회담은 두 정상이 만나서 결정하게 된다. ‘7·4’ 공동성명에서 이미 합의한 정신을 지킬 것이다.”

―비료 등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박통일〓“비료와 식량지원은 전년도에도 했다. 앞으로 인도적 차원에서의 지원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대규모 남북경제협력 등 정상회담에 사전조건이 있나.

▽박문화〓“합의된 것이 없으며 북측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접촉하면서 느낀 바로는 북측의 태도가 적극적이고 건설적이었다는 것이다. 관계기관의 협조로 실무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북의 태도가 확실히 변했다. 회담과정에서 체제선전 등은 전혀 없었다. 회담과정에서 북측에 관해 몇가지 느낀 것이 있다. 첫째로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에 신뢰를 보냈고 둘째, 김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을 경제협력의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셋째, 남북간 화해와 협력이 없이는 국제 진출이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고 넷째, 세계 여론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 같다는 것이다. 양측이 적극 협력하기로 한 만큼 이산가족 등 인도주의적인 문제, 경제협력문제 등을 실무접촉에서 논의하고 정상회담에서 결론을 낼 것이다.”

―급작스럽게 남북 정상회담을 발표하게 된 배경은….

▽박문화〓“대통령께서는 취임사부터 정상회담을 제의했고 ‘베를린선언’을 통해 확인했다. 3월17일부터 수차례 비공개 접촉을 가졌고 의견 조정의 시간을 보냈다. 4월7일 수용하겠으니 8일 만나자고 해서 합의했다. 보안문제, 남북관계 개선의 획기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정상회담 내용을 발표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북한도 이를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국과 미국은 어떤 역할을 했나.

▽박통일〓“미 중은 그동안 북한에 한국의 포용정책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남북한이 여러 분야에서 협조하기 위해서는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북한에 전달했다.”

―남북정상회담은 94년에도 합의된 바 있는데 이번 합의도 그 연장선상인가. 94년 합의사항들은 유효한가.

▽박통일〓“김영삼(金泳三)정부 때 합의된 것과 다르다. 이번은 ‘국민의 정부’가 합의한 것으로 당시와는 의제가 다르다.”

―북측이 우리측 내용을 받아들인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박문화〓“남북 간 비밀접촉 내용을 밝히는 건 쌍방 간에 도움이 안된다.”

―북한과 접촉 때 남한의 총선일정이 감안됐나.

▽박문화〓“그런 얘기는 없었다. 북측은 남측이 총선을 앞두고 빨리 하려는 것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남북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돼서는 안된다는 김대통령의 철학을 강조했다. 3월 22일 베이징 접촉에서 우리측 내용을 최종 통보했고 그 이상의 접촉은 않겠으니 최종 입장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민족의 대 경사를 그런 식(정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평양 방문 때 의제는 무엇인가.

▽박문화〓“비밀접촉에서 의제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논의가 있었으나 실무접촉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것으로 했다. 실무접촉은 남북 간 직통전화로 공개적으로 하기로 했다. 통일부가 주관해 추진할 것이다. 이산가족 등 인도주의 문제 경제협력 세계평화를 위해 협력할 문제 등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것이다.”

―동시발표는 관행인데 북한도 발표하나.

▽박문화〓“합의는 하지 않고 상호 간 편의에 따라 10일 10시에 하자고 했다. 북한이 강조한 것은 세계가 주시하는 만큼 외신에도 충분히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 주민이 알 수 있도록 발표를 한다고 했다.”

―준비 접촉의 장소는 어디가 되나.

▽박문화〓“준비 접촉은 직통전화로 북측과 논의할 것이다. 구체적 사안은 통일부가 북측과 접촉한 후 하는 것이 순서다.”

―정몽헌(鄭夢憲)현대회장이 협의기간 중에 베이징에 체류하고 있었다. 협의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박문화〓“정회장의 체류사실은 몰랐다. 당국 간 대화였기 때문에 어떤 민간단체의 도움도 받지 않았고 특사로서 박재규통일장관의 지침만 받았다.”

―‘베를린선언’ 이후 비공식 제의가 왔으나 “총선 전에 발표하지 않겠다”라고 한 뒤 이번에 발표한 이유는….

▽박통일〓“남북관계를 정치쟁점화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미루겠다는 의미였지, 안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북측이 서둘렀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다.”

▽박문화〓“북측이 호응해 왔고 민족의 대경사인 정상회담이 이뤄져야 세계 모든 사람의 축복을 받을 일이어서 빨리 발표하게 됐다.”

―아태평화위는 민간기구다. 이번 당국 간 합의서에 송호경이 민간기구의 대표로 서명했는데 아태평화위를 보는 정부의 시각이 바뀐 것인가.

▽박문화〓“송호경부위원장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신임을 받고 있다. 북한측의 공식특사로서 임명받은 것이다. 합의서에도 ‘상부의 뜻’을 표시하고 있으며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초청에 의하여’라는 점을 명기하고 있다.”

<박제균·윤영찬·김영식기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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