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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9월 5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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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배분의 효율성을 생각해 보자. 먼저 이른바 정치고십 기사부터 없애야 한다. 한국 신문의 정치기사가 과다하고 그 대부분이 흥미거리 고십이라는 비판은 어제 오늘 거듭된 것이 아니다.
이번 청문회 관련 기사만 해도 그렇다. 현행 청문회 자체의 문제점도 분명 심각하나 청문회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 역시 그것 못지않게 심각하다. 청문회 운영 실태나 제도적 한계를 객관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옷차림 말투 답변태도 분위기 인간관계 등 시시콜콜하고 잡다한 주변 사정을 지나치게 상세히 다루었다.
또한 동아일보는 옷로비 청문회 기사만을 8월 24일부터 그것도 매번 큰 사진과 더불어 3일 연속해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특히 8월24일자 1면은 같은 날짜 경쟁지들과 다르게 사실상 옷로비 청문회 보도 한 꼭지로만 채우고 말았다.
이는 뉴스가치의 왜곡이요, 정보전달의 편향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른 신문에는 대우그룹 워크아웃 관련 기사가 상당한 지면을 차지했다. 요컨대 청문회나 언론보도나 그 행태적 수준은 오십보백보였는 바 미디어 이벤트를 방지할 지면배정의 원칙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
다음으로 전체 40면중 1개면 정도는 법조 전문지면으로 할애할 것을 제안한다. 사회면이나 기타 지면에 산발적으로 등장할 뿐 사법 관련 기사가 체계적으로 전달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언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언론은 결과적으로 법규범 전달, 법치주의 전파기능을 떠안게 되므로 사법관련 사건의 정확한 의미전달은 아주 중요하다.
9월1일자 1면 톱기사 ‘대생 감자명령은 부당, 최순영회장 일부 승소’를 살펴보자. 여기서 ‘부당’이라는 표현의 취지를 ‘잘못’의 뜻으로 폭넓게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행정 소송법에서는 ‘부당’과 ‘위법’이 구별되고 ‘부당한 정도를 넘어서 위법한 정도에 이른 행정처분만 행정소송을 통해 다툴 수 있다’는 법리에 유념한다면 ‘대생 감자명령은 위법’이라는 표제를 붙여야 옳다. 또한 ‘근본적으로 비록 실체적 적법성을 갖춘 처분이라도 절차적 적법성이 결여되면 위법하다. 특히 중요한 점은 목적과 능률에 치중한 나머지 혹시라도 절차를 경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는 판결문구도 있거니와 ‘대생 최회장의 일부승소 측면’보다는 ‘절차를 무시한 금감위의 행태적 문제점’을 더욱 더 통렬하게 비판하고 심층적인 후속 취재를 해야 했다. 이번 판결은 DJ정부의 개혁절차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또한 3면 기사에는 ‘적법성 결여 땐 무효원칙 분명히’라는 잘못된 부제를 붙여놓고서 ‘이런 흠을 모두 합해도 무효로 이끌 정도는 아니며 단지 취소대상에 불과하다’고 판결 내용은 올바르게 전달하고 있다. ‘무효’와 ‘취소’ 개념에 혼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법리적 지적에 대해 너무 전문적인 차원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으나 만약 법조지면이 고정지면으로 계속 확보된다면 사법전문기자의 등장과 동시에 오히려 우리 사회의 법치 수준을 향상시키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박형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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