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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6월 2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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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2일 “중국 베이징(北京)에 나와 있는 전금철(全今哲)내각 책임참사 등 북한측 대표들이 한국 언론에 차관급회담 추진 사실이 보도된 경위를 따지며 합의문 서명을 미루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단순히 언론보도만을 지연사유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달 31일 몽골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며칠 내에 남북관계에 좋은 진전이 있을 조짐이 있다”며 남북대화재개를 시사했을 때도 반발하지 않았다. 따라서 언론보도를 트집잡는 것은 하나의 구실일 뿐 북한이 실제로 의도하고 있는 것은 최종합의를 지연시켜 남한측을 초조하게 함으로써보다 많은 지원을 얻어내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동안의 비공개 접촉에서 30만t 정도의 비료를 요구했으나 절충과정에서 대략 20만t 정도를 받는다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드는 돈은 6백억원 정도.
정부는 이미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에 5만t의 비료를 지원했기 때문에 최종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정부의 올해 대북 비료지원분은 총 25만t에 이른다.
북한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차제에 더 많은 비료를 가능한 한 빨리 얻어내기 위해 최종합의를 미루고 있다는 게 정부관계자들의 관측이다.
북한이 비료를 지원받는 대가로 남한측에 성의를 보여야 할 이산가족교류 문제에 대한 부담을 최대한 덜기 위해 이같은 전술을 쓰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진심으로 차관급회담을 무산시킬 의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료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이고 현실적으로 남한의 지원 없이는 대규모 비료획득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특유의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면서 남한측의 애를 태우다 적절한 선에서 합의문에 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