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국조계획서 기습처리/한나라당 표정]

  • 입력 1999년 1월 8일 08시 52분


한나라당은 7일 국회본회의에서 여당의 변칙처리를 사흘째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의원들은 “의회 민주주의에 조종이 울렸다”며 눈물을 글썽거렸고 어떤 의원들은 북받치는 감정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의원들은 국정조사계획서의 ‘날치기’ 처리 직후 본회의장에서 10분간 ‘침묵의 시위’를 벌였다.

국회 한나라당 총재실에서 열린 총재단 대책회의도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회의 후 이회창(李會昌)총재는 본회의장 앞으로 가서 농성중인 사무처직원과 의원보좌진 1백여명에게 “여러분은 주먹에 맞고 쓰러졌지만 우리의 의지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엉터리 민주주의를 뜯어고치기 위해 싸우자”며 새로운 결의를 다졌다.

이어 본회의장에서 열린 의원총회도 여권을 향해 쏟아내는 울분으로 가득찼다. 이재오(李在五)의원은 “오늘의 불법 날치기현장을 통해 국민의 정부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났다”며 “후안무치한 독재정권과의 험난한 투쟁여정이 남아 있을 뿐 국회의 모든 것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김덕룡(金德龍)부총재는 “역대 정권의 잘못을 한꺼번에 모두 범하는 김대중(金大中)정권은 이제 불행의 길로 가고 있다”고 경고해 의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권철현(權哲賢)의원도 “인간이하의 폭도와 싸우고 난 심정”이라며 “지금 당장 버스를 타고 청와대로 가서 반민주적 정권타도 운동에 나서자”고 목청을 돋웠다.

이같은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전날과 같은 당지도부 문책론이나 내부비판은 꼬리를 감췄다.

김부총재는 “부총재직을 사퇴할 작정이었으나 이를 유보하고 가열찬 투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의총에는 소속의원 1백36명중 1백18명이 참석했다. 이한동(李漢東)전부총재와 서청원(徐淸源) 강삼재(姜三載)의원 등 비주류 인사들도 자리를 지켰다.

그중 80여명은 이틀째 철야농성을 했다. 이회창(李會昌)총재도 밤새 농성장을 지켰다. 밤이 깊자 일부는 의석에 앉아 잠을 청했고 일부는 밖에 나가 통음을 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현 정부의 부도덕성을 규탄하는 장외투쟁을 벌이는 등 대여투쟁의 고삐를 더욱 죄어나갈 계획이다. 또 안기부 정치사찰의 실체를 대내외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전방위적인 활동을 벌인다는 방침이다.

이총재는 이날 국회에서 시민단체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529호실사건’ 관련 합동진상조사위원회 구성 제안을 전격 수용했다. 8일에는 당사에서 외신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이원재기자〉w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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