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재 稅風 사과]「반쪽사과」정국흐름 물꼬 틀까?

  • 입력 1998년 11월 4일 19시 00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4일 국세청 대선자금모금사건에 대해 전격 사과함으로써 정국은 일단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여야관계의 정상궤도진입은 다소의 시일이 더 걸릴 전망이다.

이는 이총재의 사과가 여권, 특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3일 요구한 수준에 못미치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국세청 대선자금모금사건뿐만 아니라 판문점총격요청사건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에 정치적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총재는 총격요청사건은 ‘고문조작’으로 한나라당을 억지로 관련시키려 한 것이 본질이라고 주장하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총재의 이같은 ‘분리대응’은 고심의 결과인 것으로 분석된다. 국세청사건의 경우 이미 사건의 전모는 물론 자금유입이 확인된 이상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총격요청사건은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으며 여권의 인식과 여론의 흐름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또 이마저 시인할 경우 입을 정치적 상처도 고려한 것 같다.

결국 이총재의 분리대응은 김대통령을 향한 ‘화전(和戰)’양면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여권은 이총재의 국세청사건 사과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총격요청사건에 대한 태도불변은 영수회담개최 등 정국정상화의 전제와 거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원내총무는 “총격요청사건에 대한 상식을 벗어난 역공으로 미뤄볼 때 영수회담은 아직 고려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직자는 “총풍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을 하루만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왔는데 어떻게 당장 대화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총재의 이날 발언은 정국흐름의 물꼬를 돌리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여권관계자들도 이총재가 사실상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등 강경일변도에서 선회했다는 점을 중시하고 있다.

영수회담개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청와대가 이총재의 발언에 대해 “노 코멘트”라는 반응을 보인 것은 시사적이다.

〈최영묵기자〉moo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