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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3월 23일 2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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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권영해(權寧海)전안기부장을 중심으로 중대한 음모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철저한 규명이 있어야 하며 이에 대한 수사에 중대한 진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북풍공작의 요체(要諦)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안기부―한나라당 커넥션’에 대한 여권의 첫 공식언급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심대하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여권은 이날 조대행의 발언을 시작으로 북풍공작수사문제에 있어 소극적 입장에서 ‘U턴’을 했다. 나아가 권전부장의 자해를 계기로 수세에 몰렸던 형세를 일거에 반전시키려는 역공세에 들어갔다.
국민회의의 이같은 정면대응 선언은 무엇보다 현재의 정국이 ‘본말전도(本末顚倒)’ ‘적반하장(賊反荷杖)’격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즉 이번 사건의 핵심은 북풍공작임이 분명한데도 문건진위공방 등 샛길로 빠지는 바람에 오히려 여권이 궁지에 처하게 됐다는 인식이다. 이는 처음부터 사태확산에 따른 부작용만을 지나치게 의식, 정치인에 대한 수사자제 등의 방침을 표명, 한나라당에 ‘탈출구’를 마련해준 꼴이 됐다는 자성에서 출발한다.
여기에서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은 조대행이 말한 ‘중대한 진전’의 내용이다. 아직 구체적인 실체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권전부장에 대한 수사에서 한나라당과의 연결고리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확보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유력하다. “22일부터 ‘흑금성’ 박채서(朴采緖)씨가 입을 열었다”며 수사진전을 시사한 안기부관계자의 귀띔이나 입이 무거운 조대행의 평소 스타일로 미뤄볼 때도 그렇다.
다시 말해 23일을 기점으로 한 여권의 반격은 뭔가 ‘믿을만한 물증’을 발견한데 따른 자신감의 발로라는 분석이다. 또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문건에 거명된 국민회의의원들에 대한 안기부 조사결과 ‘무혐의’가 완벽하게 입증됐기 때문에 나온 결론인 듯하다.
이에 따라 국민회의는 이날 다각적인 대야(對野)공세를 펼쳤다.
우선 안병수(安炳洙)북한조평통위원장대리를 만난 한나라당 정재문(鄭在文)의원이 돈을 건네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를 만난 과정 자체가 국가보안법위반이라는 주장을 거듭 제기했다. 또 “권전부장이 북풍사주금으로 제공한 25만달러가 한나라당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었다면 정치적 연관성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조대행이 “수사가 끝난 뒤 한나라당이 원하면 국정조사에 당당히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도 한나라당에 대한 경고용으로 풀이된다.
〈최영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