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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3월 22일 20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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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부출범 직후부터 북풍공작수사에 매달려온 여권은 사건의 본질이 ‘대선과정에서의 북풍공작과 용공음해를 통한 기득권세력의 정권유지기도’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에 맞춰 초기에는 ‘윤홍준(尹泓俊)기자회견사건’이 안기부의 조직적인 공작에 의한 조작임을 밝혀내는데 성공, 북풍공작의 진상에 한걸음 다가서는 듯했다. 이에 힘입어 안기부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추진계획도 마련했다.
그러나 이같은 여권의 구상은 두 차례의 결정적인 실수 때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우선 정대철(鄭大哲)국민회의부총재 등 여권관계자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북풍공작수사는 때아닌 ‘문건공방’으로 변질됐다. 정부총재는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안기부공작원들의 정보보고문서내용을 유출, 정국을 소용돌이치게 만들었다. 또 청와대나 안기부도 문건을 입수하고도 신속한 수사착수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혼란을 부추겼다. 이 때문에 여권은 정치권으로의 파문확산을 지나치게 의식, 수사를 조기에 매듭지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따라 윤홍준사건을 제외한 한나라당 정재문(鄭在文)의원의 대북(對北)자금제공의혹이나 ‘오익제(吳益濟)편지사건’ 등 더 큰 ‘몸통’에 대한 진상규명작업은 부진을 면치 못하게 됐다. 특히 문건유출로 북풍공작의 실체보다는 문건내용을 둘러싼 여야간 공방이 전면에 부상하는 우(愚)를 범하게 됐다.
이런 와중에 터져나온 권전부장의 자해사건은 북풍공작수사를 다시 한번 왜곡시켰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나라당은 ‘정치보복’‘강압수사’‘진상호도’ 등 대여(對與)총공세를 통한 국면전환에 나섰고 여권은이를방어하느라급급한실정이다.
두차례의 실수로 북풍공작수사문제는 정치공방으로 탈바꿈했으며 앞으로 북풍공작의 진상을 어떤 과정을 거쳐 규명하고 어떻게 마무리지을지 좀처럼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문건유출이나 자해사건 모두 치밀하지 못한 여권의 대응 때문이었다는 비판은 당연한 결과다.
〈최영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