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風」회오리 신중히 접근해야

  • 입력 1998년 3월 18일 19시 29분


‘북풍(北風)공작’ 회오리가 일파만파로 번져나가고 있다. 자칫 나라 전체가 북풍회오리에 휘말려 국정이 마비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권 전체가 북풍에 직간접으로 연루됐다는 안기부의 ‘해외공작 정보보고’ 문건 내용을 믿을 수도 없고 믿지 않을 수도 없다. 경제살리기와 실업대책 등에 국력을 모아야 할 때 또 다시 정치가 ‘과거사’에 발목이 잡히게 됐으니 보기에 따라서 이보다 더한 낭패가 없다.

의혹은 분명히 밝혀야 한다. 누가 덮자고 해서 덮어질 일이 아니다. 이미 안기부의 비밀문건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정치권에 유출됐고 그 충격적인 내용의 일부가 언론 등에 공개된 이상 국민의 의혹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도 진상은 철저히 밝히는 것이 옳다.

‘진실을 덮는 것이야말로 국기(國基)를 흔드는 것’이며 왜곡된 남북관계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안기부 고위관계자의 언급은 그런 점에서 맞다.

다만 진상규명이 불필요한 정치적 파문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진상은 공정하게 밝히되 정치성을 띠거나 정치보복의 수단이 돼서는 안된다고 경계했다.

공작의 주체가 안기부이든 정치권이든 북한이든 사실은 사실대로, 사실이 아닌 것은 사실이 아닌 대로 밝히는 것이 특정정파를 위한다거나 해친다고 보는 것 자체가 정치적 판단이라는 점을 수사당국과 정치권은 명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권 일부가 사건의 축소 또는 확산을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거나 사건 수사를 ‘마녀사냥식 야당 파괴공작’으로 규정하고 과잉대응하는 것은 모두 현명하지 못하다. 정치권은 수사당국의 조사를 지켜보면서 사건이 조용히 마무리되도록 협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풍회오리를 정치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존립기반을 흔들고 남북관계를 어렵게 하며 여야의 극한대립과 정국혼란을 부를 염려가 있다. 이것은 조금도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북첩보망만 해도 문제의 문건이 공개되면서 완전히 와해될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지금 국정의 최우선 순위는 정치권이 합심해 빨리 경제를 살리는 일이다. 불필요한 정쟁으로 국력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이런 때 북풍회오리가 국정을 송두리째 흔들며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진전된다면 난감한 일이다.

다행히 외환위기의 급한 불은 잡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실업과 기업구조조정 등 눈앞에 닥친 경제현안에 온나라가 매달려야 할 때다. 북풍수사가 의혹해소 차원을 넘어 정국불안과 경제위기를 재촉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누구보다도 정치권이 이 점을 깊이 헤아려 북풍회오리에 신중히 접근하는 자제력을 발휘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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