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家臣들은 黨-국회 책임져라』…설훈-김옥두씨 부상

입력 1998-03-09 19:50수정 2009-09-2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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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차관급 인사까지 거의 마무리함에 따라 새정부 ‘맨파워’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현재까지 나타난 ‘김대중정부’의 용인술은 한마디로 ‘강력한 친정체제의 구축’이다.

무엇보다 권력핵심부서에 최측근과 호남출신인사들을 대거 기용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산술적으로 보면 차관급이상의 인사 중 호남출신이 24.6%로 다른 지역과 형평을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또 청와대비서실장 안기부장 행정자치부장관 국세청장에 비호남인사를 발탁한 것도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정보 사정 공안 등 이른바 통치권과 관련된 요직 중 호남인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압도적이다. 내각에는 호남출신인 박상천(朴相千)법무장관 천용택(千容宅) 국방장관이 입성했으며 한승헌(韓勝憲) 감사원장도 호남인맥이다. 김태정(金泰政) 검찰총장 김세옥(金世鈺) 경찰청장도 역시 호남출신이다.

안기부는 신건(辛建) 1차장과 나종일(羅鍾一) 2차장, 이강래(李康來) 기조실장 등 세 요직 모두를 호남인사로 채웠다.

호남인맥과 함께 새정부의 양대축을 이루는 또 하나의 세력은 국민회의 출신의 김대통령측근들. 그중에서도 가신중심의 구주류보다는 신주류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한화갑(韓和甲)원내총무대행 등 가신들은 주로 당에서 김대통령을 측면보좌하도록 했다.

청와대에서는 김중권(金重權)비서실장 문희상(文喜相)정무수석 박지원(朴智元)공보수석 등이, 안기부에서는 당내 ‘빅3’의 한 사람인 이종찬 안기부장이 김대통령을 밀착보좌하고 있다.

내각에도 공권력을 총괄하는 행정자치부의 김정길(金正吉)부총재를 비롯, 박정수(朴定洙)외교통상부장관 이해찬(李海瓚)교육부장관 박태영(朴泰榮)산업자원부장관 신낙균(申樂均)문화관광부장관 김성훈(金成勳)농림부장관 등이 포진해 있다.

이렇게 볼 때 김대통령은 그동안 권력으로부터 소외됐던 세력으로 새로운 파워엘리트를 형성, 대대적인 물갈이를 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공동정권이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김대통령중심의 강력한 친정체제를 구성했다. 내각에는 3명의 자민련몫 충청권인사들이 들어있지만 주로 경제분야에 몰려 있다.

이같은 인선내용에 대해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부산 경남인사들을 선호했던 전례에 빗대 비판적인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50년만의 정권교체에 따른 자연스러운 ‘세력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김대통령측의 주장이다.

즉, 수십년 동안 왜곡돼온 인사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배려는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3공화국 이후 검찰 경찰 국방부 안기부 등 중추권력기관의 수장 중 호남출신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단적인 예로 꼽는다.

이와 함께 이같은 인사는 오랫동안 야당에만 머물러온 데 따른 김대통령의 불가피한 한계라는 시각도 있다. 그만큼 인재풀(Pool)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측근과 호남인사위주의 이같은 인력배치는 그 자체가 권력남용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김대통령이 인식, ‘일탈(逸脫)’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대통령인사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장관과 차관간의 명백한 역할분담이다.

김대통령은 17명의 장관 중 12명을 국민회의나 자민련의 정치인으로 채웠다. 반면 차관급 38명 중 당출신인사는 3명 뿐이다. 개혁성이 강한 장관들로 ‘책임내각’을 구성하면서도 부처출신 차관들을 기용, 전문성과 안정성을 보완하려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영삼정권과 달리 교수출신의 기용을 억제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장차관급 중 교수출신은 김성훈농림부장관 등 5명에 불과하다. 이는 김전대통령이 행정경험과 개혁성이 검증되지 않은 교수출신을 대거 기용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과거정권의 예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새정부에 기용할 인사들에 대한 사전검증절차도 거쳤다. 김전대통령이 ‘깜짝쇼’라고 불릴 정도로 극도의 보안속에서 인선을 한 반면 김대통령은 이례적으로 후보명단을 사전에 발표하는 등 여론의 반향에 크게 신경을 썼다.

그 결과 일부 각료의 부동산투기의혹 등이 문제되고 있기는 하지만 김영삼정부의 조각과 같은 집단적인 후유증은 없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전반적인 인사에 참신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최영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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